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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문화 부국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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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건 전쟁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D War)’가 일으킨 ‘더 워(The War)’다. 단순히 흥행 가도를 달리는 것을 넘어 영화 한 편이 편 가르기 도구로 변질하는 양상이다. 지지자와 비판자 간에 전선이 그어지고 지지자들은 비판자들에 대해 매카시즘적 마녀사냥도 불사한다. 건강한 비판과 순수한 열광은 실종됐다.

‘디 워’의 흥행은 “애국·민족·시장주의와 ‘인간극장’ 드라마의 결합물”이다(문화평론가 진중권). 할리우드 못잖다는 성취감에 감독의 남다른 성공담이 겹쳐졌다. 이처럼 영화 외적 요인이 흥행의 동력이 되는 것은 역대 1000만 영화에 공통된 현상이다.

‘디 워’가 이들과 다른 점은 ‘비주류 영웅담’으로 소비됐다는 것이다. 충무로 변방의,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 인터넷 공간 안에서 비주류의 영웅으로 발견돼 집단적으로 추앙받은 것이다. 평단의 혹평은 박해받는 약자 이미지를 강화했다. TV 오락프로에서 흘린 감독의 눈물은 감성드라마를 완성했다. ‘가상의 주류’ 안에는 기성 평단·언론·충무로 일반이 싸잡혔다. 국산 기술의 발전과 할리우드행이라는 개발·성장주의에 더하여 ‘영화는 오락일 뿐’이라는 대중주의, 전문가 집단에 대한 반감 등이 맞물렸다.

좀 더 눈여겨볼 부분은 비판자든 지지자든 동의하고 있는 ‘문화 부국론’이다. 애초에 ‘디 워’ 지지자들을 가장 자극한 것도 이 대목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고, 할리우드도 간다는데 우리끼리는 격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심 감독이니까 인정 안 한다는 불만이다.

심 감독은 ‘문화 부국론’의 1차 수혜자다. 신지식인 1호로 선정돼 창의산업의 기린아로 주목받았다. ‘쥬라기 공원’과 현대 자동차 판매 수익을 비교하며 영상산업 육성책을 편 김대중 정부에 의해서다. 이후 ‘문화 부국론’은 ‘차세대 성장동력’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영화담론을 지배했다. 한류, 스크린 쿼터, 해외 영화제 수상, 1000만 신드롬 등이 ‘문화 부국론’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영화는 진작에 애국주의적 소비나 열광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문화 부국론은 문화지식사회로 진입한 21세기에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궁극으로는 문화에서 돈과 산업, 성장논리를 앞세운다는 함정이 있다. 돈 많이 벌고 나라 이름 떨쳐야만 최고라는 믿음을 퍼뜨린다. 한국 영화가 잘 돼야 한국이 잘사니 한국 사람은 무조건 한국 영화를 지지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를 넘어서는 문화적 시선은 쉬 보이지 않는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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