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소 대비 법적대응 준비/바빠진 국제그룹 인수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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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부분 “인수절차 하자없다”주장/이미지 손상될까 사태추이 촉각
국제그룹 해체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자 한일그룹 등 국제그룹 계열사를 인수한 기업들은 겉으로는 당시 인수절차에 하자가 없어 양정모씨 측에서 반환요구를 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29일 오후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외부에 발표할 공식적인 반응을 정리하는가 하면 양씨측이 반환소송을 제기할 것에 대비,당시의 자료를 찾아 챙기면서 고문변호사와 법적인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국제상사 등 5개기업을 인수했던 한일그룹측은 『우리도 타의에 의해 선의로 인수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 결정과 무관함을 강조,담담한 표정이면서도 『인수후에 잘 키워나갔다』 『앞으로의 사태추이를 봐가며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에 대해 깊은 관심.
특히 양씨가 (주)한일합섬을 상대로 주식인도 반환청구소송(액면가 총 59억9천2백만원)을 낸 고법에 계류중인 한일측은 『헌법재판소 결정은 민사와는 무관하다』고 말하면서도 혹시 불리하게 작용할것에 대비,지난 27일부터 유럽지사 순방중인 김중원회장에게 긴급연락하는 등 사태분석에 착수.
지난 91년 12월 서울 민사지법에서는 한일측이 이겼지만 양씨가 헌재결정을 토대로 『원인무효』 주장을 거세게 밀고나올 전망이기 때문.
○…당시 국제그룹으로부터 연합철강·국제종합기계·국제통운 등을 인수했던 동국제강그룹은 장상태 그룹회장이 일본 출장중이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내용을 29일 오후 팩시밀리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동국제강측은 『현재로선 아무런 할말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양씨가 주식반환 청구소송이라도 내면 기업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지않을까 전전긍긍.
특히 동국제강 그룹은 국제측이 『알짜기업을 차지해놓고도 그룹해체이후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장 회장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고 있는데다 인수무렵 새세대 심장재단 등에 거액의 성금을 낸 사실이 밝혀지는 등 구설수에 휘말려 더 큰 부담을 떠안은 표정.
○…동서증권과 국제상사 건설부문을 인수한 극동건설은 29일 오후 종합기획조정실장인 김육곤전무를 중심으로 임시회의를 갖는 등 국제그룹의 반환요구 등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 관계자는 『위헌판결이 났지만 당시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제일은행으로부터 인수해 아무런 법적인 하자가 없었다』며 『양씨측의 움직임을 보아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반환요구가 있을 경우 정면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소송에 대비해 관련담당 실무자들이 인수당시의 방대한 관련자료부터 찾아 정리중』이라고 덧붙였다.
○…원풍산업을 인수한 우성건설그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인수에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 관계자는 『원풍산업을 인수한 것은 국제그룹이 활동하고 있을때 이미 원풍산업의 서울 신대방동 공장부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고 대신 청주 공업단지에 공장을 지어주는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국제그룹의 해체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그룹 해체가 진행된 당시에 원풍산업은 적자규모가 크고 만성적인 노사분규로 6개월동안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으며 신대방동 공장부지 매입 인연때문에 인수한 것』이라며 『양씨측의 반응을 보아 그때가서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측은 30일 85년 당시 경영이 어려운 국제그룹에 대한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해 재무부·은행감독원과 협의하던중 제3자에게 인수시켜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식의 입장을 표명해 주목.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한 대응문제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재무부이므로 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며 은행측은 국제그룹측이 낸 소송에 대응해나가는 식으로 하겠다고 언급.
제일은행은 국제측이 한일합섬 등을 상대로 이미 냈거나 앞으로 추가할 주식인도 반환청구소송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당시 은행측에서 자구노력을 위해 받아간다는 위임장과 도장을 그룹해체에 이용한 점에 대해 책임을 물어 올 가능성도 있어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파문에 긴장하는 모습.
○…재계는 그 선언적 의미에 대해서는 몹시 반색을 하면서도 헌재 결정이후 빚어질 혼란에 대해서는 적지않게 우려.
재계 관계자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초법적이고 강압적인 재벌 응징이 잘못된 것으로 「공식 인정」됨으로써 앞으로 기업활동과 관련해 심리적 부담을 상당히 덜게됐다』며 『이를 계기로 정부 주도의 갖가지 대기업 정책이 재계 자율에 맡겨졌으면 한다』고 기대.
이들은 그러나 『그룹해체이후 8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복원이 쉽지않은데다 양씨측과 인수기업들간의 송사과정에서 예기치 못했던 기업비리가 돌출되는 등 재계 전체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크다』고 걱정.<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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