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계약」 입증이 열쇠/양정모씨 「국제」 되찾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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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재 위헌결정으로 일단은 유리/지분줄어 승소해도 「복원」 힘들듯
양정모 전 국회그룹회장이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그룹의 복원을 공식선언함에 따라 「실지」 회복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씨측은 이미 진행중인 국제상사 주식반환소송외에 다른 계열사를 찾기위한 소송을 준비중임을 밝혀 집단송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85년 정부에 의해 강행된 국제그룹의 해체가 사유재산에 대한 부당한 침해이므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단 양씨측에 유리한 입장을 마련해 준 셈이다.
양씨측은 국제상사관련 소송(1심)에서 『당시의 인수계약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었는데 이번 헌재의 결정은 이를 뒤집은 것이다.
○민사쟁점 피해가
그러나 27쪽에 이르는 장문의 헌재결정문을 보면 정부의 부당한 개입과정이나 관치금융의 폐해 등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하면서도 민사소송에서 쟁점이 될만한 부분은 조심스럽게 피해갔다.
게다가 한일합섬 등 인수기업들은 정당한 계약에 의해 국제를 인수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들도 「선의의 피해자」라고 주장,민사재판에서 승소를 이끌어 내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양씨측이 선의의 피해자라는 인수기업의 주장을 일축하기 위해서는 이들 기업이 국제를 인수하기 위해 로비한 사실을 입증하거나 계약자체를 원인무효로 만들어야 한다.
인수기업의 로비사실은 국회 5공비리 특위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도 밝혀지지 않은만큼 민사재판 과정에서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앞으로 원인무효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의 율사들이 치열한 논리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양씨측은 헌재의 결정문이 인수계약 이전에 인수결정이 난 사실을 위헌의 중요포인트로 지적했다는 사실로 원인무효를 이끌어 내는데 유리한 근거로 들고있다. 다시말해 계약이전에 정치적으로 인수기업이 선정됐으므로 한일합섬 등을 「선의의 상대방」으로 볼수 없다는 주장이다.
○법정공방 거셀듯
양씨측은 또 당시 주거래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이 국제의 자구노력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주식의 임의처분을 위임하는 각서와 처분승낙서를 받아간뒤 제3자에게 팔아넘겼으므로 「사기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따라서 제일은행과 인수기업의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양씨가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인수기업에 의한 「8년간의 양육」 과정에서의 증자 등으로 소유주식의 비율이 달라져 경영권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상사의 경우 해체당시 총발행주식(7천7백66만주)의 16.28%인 1천2백60여만주를 양씨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전체주식수가 두배 가까이 늘어나 주식을 모두 반환받아도 9%정도에 불과하며,반면 한일합섬이 확보하고 있는 주식이 전체의 33.37%에 이르고 있다.
동서증권은 해체당시 자본금이 2백억원에서 현재 2천8백억원으로 늘어난데다 당시 양씨의 지분이 8.55%에 그친 반면 현재는 극동건설이 12.63%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대해 양씨측은 주식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경영권의 회복을 포함한 의미이며 그동안 유·무상 증자로 주식수가 늘어났다고 하나 당시 1인 대주주였던 양씨의 지분도 같은 비율로 늘어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씨건강도 변수
그러나 재계와 법조계는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가 쉽지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또한 앞으로도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과정에서 이미 73세의 고령인 양씨의 「건강」도 변수다.
다만 양씨측은 정부의 강압에 의해 해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만큼 어느정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특히 정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수도 있다.
이 경우 정부가 패소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만제 전 재무장관 등을 상대로 정부가 「공무원의 과실」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태가 더욱 미묘해질 전망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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