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국제그룹 해체 위헌/헌재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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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권력 개입 강행처리는 잘못”/부당한 통치행위 쐐기/행정부와 재계 엄청난 파문 예상/뺏긴 회사찾기 소송시사/양정모 전 회장
85년 정부에 의해 강행된 국제그룹 해체는 사유재산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침해이므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 결정은 국제그룹의 해체가 원인무효임을 최종 확인하는 것이어서 당시 국제그룹회장 양정모씨가 인수업체인 한일합섬 등을 상대로 제기중인 민사소송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재계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관계기사 3,4,8,9면>
이 결정은 또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위헌임을 처음으로 확인,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던 불법행위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시윤재판관)는 29일 전 국제그룹 회장이 85년 당시 재무부장관인 김만제씨를 상대로 낸 「공권력행사로 인한 재산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 최종 심판결정에서 『재무부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85년 2월7일에서 같은달 21일 사이에 행한 국제그룹 해체의 기본결정과 인수업체결정,국제그룹 회장 양씨에게 주식처분 위임권을 받아낸 행위,정부가 만든 보도자료를 제일은행장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케한 지시 등 국제그룹의 해체를 위해 한 일련의 공권력행사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해·관리할 수 없다는 사영기업 경영권 불간섭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며 『따라서 국가의 공권력이 부실기업의 정리를 위해 그 경영권에 개입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법률상의 규정 없이는 불가능하며 불가피한 개입의 경우 긴급명령·비상조치에 근거해야 하는데도 국제그룹 해체의 경우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공권력 자신이 직접 사기업의 처분 정리를 했으므로 위헌』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5공청문회와 검찰의 5공비리 수사를 통해 당시 국제그룹 해체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재무장관이 제일은행장에게 국제그룹의 부도처리를 지시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뒤 89년 2월27일 『당시의 공권력 행사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었다.
양씨는 또 국제상사 인수업체인 (주)한일합섬을 상대로 주식인도 반환청구 소송을 냈으나 91년 12월27일 서울민사지법에서 『당시 강압에 의해 주식양도가 이뤄졌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현재 고법에 계류중이다.
그러나 양씨의 사위인 김덕영씨(45·전 국제그룹 부회장)가 신한투자금융의 경영권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은 90년 2월 승소하는 등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려 논란을 빚어왔다.
국제그룹 해체와 관련,헌재에 의해 당시의 정부 결정이 위험임이 확인됨에 따라 양씨는 앞으로 국제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낼것으로 예상돼 재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당시 기업을 인수했던 업체들과 격렬한 법정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씨는 29일 공권력행사에 의한 재산권침해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진후 『기업인은 기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밝혀 경영권 회복에 나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양씨는 또 『현재 국제상사 일부 주식에 대한 소송을 낸 상태이나 앞으로 상황을 지켜본뒤 측근들과 의논해 모든 일을 결정하겠다』고 말해 국제상사외에 다른 계열사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따라 국제 계열사를 인수한 기업과 양씨측과의 소송이 잇따르는 등 재계에 적지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양씨는 또 『문민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이런 억울함이 밝혀졌으며 나 개인은 물론 5만명 국제가족의 명예를 회복한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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