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미군기지 코앞까지 날아온 러시아의 장거리 폭격기 Tu-95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8일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전략폭격기를 미군 기지가 있는 태평양의 괌 섬 인근까지 출동시켰다. 일종의 무력 시위다. 냉전 종식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미국도 상당히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해 즉각 전투기를 출동시켰으나 다행히 무력 충돌은 없었다. 괌은 태평양 지역 최대의 미군 근거지로 앤더슨 공군기지와 아프라 하버 해군기지가 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폭격기 출격은 풍부한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러시아가 연이어 펼치고 있는 무력 시위의 일환이다. 특히 러시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경고 성격이 강하다.

냉전 당시 소련의 전략 핵폭격기 Tu-95(사진 윗쪽)가 나토 작전구역으로 진입하자 캐나다 공군의 CF-18 호넷 전투기(아랫쪽)가 감시 비행을 하고 있다. Tu-95의 특징인 터보 프롭 엔진에서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선명하게 보인다. CF-18은 미국 공군의 F/A-18 호넷 전투기를 캐나다 공군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캐나다 공군은 이 기종을 첫 도입했다.


50년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폭격기-100년 채울 가능성도

Tu-95 폭격기=옛 소련이 1956년 실전 배치한 장거리 전략폭격기다. 핵 폭탄을 싣고 미국이나 유럽 깊숙이 침투해 폭격을 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됐다. 가스터빈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터보프롭 엔진을 4대 장착하고 있다. 최대 시속 925km의 속도로 1만5000km를 비행할 수 있다. 제트엔진을 장착한 미국의 B-52와 비슷한 임무를 가진 전략 폭격기다.

실전 배치 50년이 넘는 이 폭격기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것은 물론,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2040년까지는 끄떡없이 계속 운용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장장 84년 실전 배치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아마 전무후무한 기록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2040에 꼭 퇴역한다는 것도 아니므로 자칫 100년 운용의 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언뜻 구식으로 보이는 이 비행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현역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양한 변형기종을 운용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표 참조>

1985년 나토 기동훈련이 열린 노르웨이 근해로 출격한 소련의 전략폭격기 Tu-95 곁을 미 해군의 F-14 톰캣이 감시 비행하고 있다. F-14는 Tu-95가 나토군 항공모함을 레이더로 조준하는 등 교전규칙을 충족할 경우 즉시 격추시킬 준비를 하고 그 곁을 따르고 있다. Tu-95의 후방에 설치된 기관포는 윗쪽으로만 쏠 수 있어 F-14는 이를 피하기 위해 그보다 조금 낮게 비행하고 있다. 여기 보이는 Tu-95는 해상정찰·대함공격·전자전용으로 개량한 Tu-95RT기종이다.


미사일로 항공모함 잡는 폭격기로 더 유명

사실 지금 Tu-95는 핵 폭격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미사일 발사 폭격기로 주로 운용된다. 특히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는 가공할 전술 폭격기로 이름 높다. 최고 마하 4의 속도로 최대 440km를 날아가는 ‘라두가 Kh-22 대함 장거리 미사일’과 아음속의 속도로 2500-3000km를 비행하는 ‘라두가 Kh-55 그라나트 크루즈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도록 변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자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 등 실로 다양한 기종이 있다.

세계 최대의 핵폭탄 투하 전력

단 한번의 임무를 위해 특별히 설계ㆍ제조된 Tu-95의 변형 버전도 있다. Tu-95V가 그것이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61년 소련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큰 50메가톤 짜리 초대형 핵폭탄 ‘차르 봄바’를 만들었다. 황제 폭탄이라는 뜻이다. 원래 100메가톤으로 설계됐으나 핵 피해를 우려해 줄인 게 이 정도다. 이 폭탄은 파이어볼(fireball)은 4500m나 된다. 2차대전 말기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20kt 위력의 원폭 ‘팻맨’의 파이어볼이 200m 정도였다. 핵폭탄이 터진 곳으로부터 거의 모든 것이 녹아버리는 거리가 이 정도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대도시의 몇 배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다.

문제는 무게가 27t이나 된다는 점이다. 이 무거운 폭탄을 어떻게 적지로 싣고가느냐가 문제였다. 소련은 Tu-95를 떠올렸다. 이 폭격기는 이 거대한 폭탄을 아래쪽에 달고 북극해로 날아가 노바야 젬랴 섬에 떨어뜨렸다. 1961년 10월30일의 일이었다.

러시아의 Tu-95M가 2003년 9월28일 알래스카 서부 해안에 접근하자 미국 공군의 F-15C 이글 전투기가 감시를 위해 따라붙고 있다. 이 기종은 원거리에서 항공모함 등을 공격하기 위한 크루즈 미사일 발사 폭격기로 개량된 Tu-95M다.


<러시아 tu-95 개요>

4발 터보프롭 엔진을 갖춘 전략핵폭격기
1956년 실전배치, 2040년까지 계속 운용할 계획

최대속도: 시속 925km
항속거리: 1만5000km
작전고도: 1만2000m
무장 : 15t 분량의 미사일(사거리 2500-3000km의 Kh-55 크루즈 미사일 등)
승무원 : 7명(조종사 2명, 후방 방어무기 사수 1명, 기타 4명)

길이: 49.50m
넓이: 51.10m
높이: 12.12m
중량: 90t

[Tu-95의 다양한 변형 기종들]

<고전형>
▶Tu-95/Tu-95M(Bear A) -장거리 전략핵폭격기 기본형/기수에 재급유 노즐 없는 유일한 버전
▶Tu-95V- 차르 봄바 폭격에 사용하도록 특별 제작
▶Tu-95M-55 -미사일 폭격기
▶Tu-95U(BearA) - 훈련용
▶Tu-95K/Tu-95KD(BearB) -AS-3 캥거루 공대지 미사일 장착용/Tu-95KD은 재급유 노출 최초로 장착
▶Tu-95KM(Bear C) - Bear B 개량형
▶Tu-95RTs(Bear D)-Bear A 개량/해양 정찰ㆍ감시 및 전자정보전용
▶Tu-95MR(Bear E) - Bear A 개량/해군 사진정찰용
▶Tu-142/Tu-142M(Bear F) - 잠수함 공격용 폭격기/Tu-95를 바탕으로 해양 수색ㆍ정찰용으로 재설계
▶Tu-95K22(Bear G) -‘라두가 Kh-22 대함 장거리 미사일’ 장착할 수 있게 현대적 개량
▶Tu-95U(Bear T) - 훈련용

<최신형>
▶Tu-95MS/Tu-95MS6/Tu-95MS16(Bear H) -Kh-22 크루즈 미사일 폭격기 장착 가능하도록 완전 개조
▶Tu-142MR(Bear J) - Bear F를 개량해 잠수함 등 통신ㆍ지휘용으로 사용

<기타>
▶Tu-95/2 -시제품
▶Tu-95K -시험용
▶Tu-96 -고속폭격기로 개량/시험비행도 못 하고 개발 중단
▶Tu-119 -핵추진 폭격기/ 시험 비행도 못하고 개발 중단
▶Tu-142LL -엔진 시험용

※그외에도 서구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소련/러시아에서 설계ㆍ제조했다 사용 못 하고 폐기한 변형 기종 다수

위에서 본 모습. 기수앞에 뾰족튀어나온 것이 공중급유를 위한 노즐이다.

후방 기관포 사수의 모습이 보인다.

작전 중인 모습.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ciimcc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