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가 성공하려면…/송병락(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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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경제 5개년계획」의 근본목적은 「선진경제권진입」이다. 이 계획기간에 잘하면 한국은 1인당소득 1만달러 이상의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앞으로의 시대는 유럽공동체·북미자유무역 공동체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 공동체주의 시대인데 신경제계획은 그 근본 이념을 공동체주의로 바르게 제시하고 있다. 노와 사는 대립관계가 아닌 같은 「기업원」이며 개인은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라는 표현 등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관·기업 수평적 관계로
한국경제를 전공하는 어느 일본인은 얼마전 한·일 경제의 기본차이를 다음과 같이 밝힌바 있다. 즉 일본에서는 정치가·정부관료 및 기업가가 수평적 협조관계에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심한 수직적 통제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 밑에 청와대수석,그 밑에 다시 그룹 총수와 계열사 사장 등이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정치가들이 주택 2백만호 건설 등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더라도 기업가가 반대하면 추진이 안되거나 크게 수정되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무리하게 추진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만약 그룹 총수들이 반기를 들면 세무사찰 등의 위협을 받게되며 탄압이 심할 때는 그룹을 뛰쳐나와 대통령 출마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평생 유능한 사업가로 있으면 관료 밑에 들어가고,사업을 그만두고 정치가가 되면 관료위에 올라가게 되는가가 한국의 정부와 기업관계의 근본문제라고 하였다.
그런데 신경제계획은 이런 과거의 지시·통제식의 잘못된 경제운용방식을 바로 잡고 「국민의 참여와 창의를 새로운 원동력」으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경제전쟁 시대이므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경제 주체는 기업경영인들이다. 앞으로 기업인과 정부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가 신경제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통령이 기업 경영인들을 직접 적극적으로 밀어줄때는 경제가 크게 활력을 얻었고 특정 정부관료 밑에 들어가도록 했을때는 침체를 면치 못했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일본의 기업은 치열한 국제경쟁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거의 세계제일일 정도로 높으나 기업을 다스리는 정치나 정부는 국제경쟁을 해본적이 없어 양자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한다.
사실 현재 일본은 정치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정부개혁의 목소리도 높다. 오마에 겐이치는 치열한 국제경쟁을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본정부의 법제도는 최소한 5년 또는 10년마다 완전히 바꾸는 등 「정부의 국제경쟁력」 향상의 위한 획기적 조치가 취해져야 된다고 하였다. 한국의 신경제개획의 큰 방향도 「정부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될때의 계획은 「신경제사회 발전계획」으로 「신」자가 붙은 것이었다. 한국도 신자 붙은 계획기간은 선진국이 된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신자 붙은 계획으로 경제가 크게 침체된바 있는데 그 이유는 소유의 분산·억제 등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정책 때문이었다. 앞으로 신경제계획은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고하고,기업을 대대적으로 키우고 창설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를 크게 강화하여야 한다. 하버드 경영대 포터교수가 『기울어지는 국가의 목표일수록 소유분산·공평분배·사회정의 등으로 고상(?)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였음은 시사하는 바 크다.
○정부도 국제경쟁력을
앞으로의 경제전쟁은 자본주의 체제간의 경쟁이다. 튼튼한 체제를 가진 나라가 승리할건 말할 나위도 없다. 어느 그룹총수에 따르면 일본에는 세계수준의 기업경영인이 백만명을 넘었으나 한국에는 천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앞으로 세계적인 기업과 기업경영인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야 하는데 신경제계획은 대기업 규제조치만 많이 하는 것 같다.
일본의 각종 경제계획 수치는 50년대에는 구속력이 강한 것으로 민관이 다같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계획이 거듭됨에 따라 그 구속력은 계속 감소했고 나중에는 일기예보정도의 전망치로서 밖에 간주되지 않았다. 신경제 계획치도 구속력이 강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경제환경 급변의 세대,심지어 역사가 소용돌이치는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런 시대에서 각종 계획치를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은 큰 잘못이다. 융통성있게 수정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경제계획은 공업부문·사회간접부문 등 「부문」수준 또는 공업부문내의 자동차산업 등 「산업」수준까지만 내려간다. 그밑에 「기업」차원까지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제 계획은 기업의 차입금 이자처리나 가지급금까지 규제하는 등 「기업 경영부문」도 계획하고 있다. 「경제」계획이 하면 안될 「경영」계획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기업 육성필요
신경제 「계획」은 신경제 「개혁」이라고 할 정도로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의 정의를 잘 몰라서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혁이 가령 나라경제가 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을 때 그 방향을 바로 잡고 또한 서쪽으로 가도록 만든 사람이나 만들 사람을 처벌하는 것인가. 그리고 방향이 바로잡혔을 때 국민이나 기업을 더 잘 뛰도록 하는 「혁신」과는 어떻게 다른가. 「개혁」,「개선」,클린턴 대통령이 주장하는 「변화」,슘페터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혁신」 등의 관계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경제계획의 추진방향은 세계경제 전쟁 시대에 한국기업·한국정부,그리고 국민 개개인 모두의 국제경쟁력 향상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약력 ▲54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남가주대 경제학박사 ▲KDI 산업정책실장 ▲한국과학기술원 대우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겸 세계경제연구소장(현) ▲저서 『한국경제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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