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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전쟁|한국기업 "발등의 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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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상표와 병모양으로 유명한 코카콜라는 정작 제조기술은 특허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독특한 맛을 내게 하는 코카콜라의 원료와 제조공정은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로 1백2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허등록을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보호기간이 만료돼 모든 기술이 공개되었을 것이란 점에 비춰 코카콜라사는 영업비밀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켜온 기업으로 꼽힌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잠시 멈췄다가 작동하는 자동차의 간헐식 와이퍼 뒤에도 12년의 지루한 법정투쟁을 포함, 무려 28년 동안의 특허싸움이 깔려있다.
62년 전웨인 주립대학 로버트 컨즈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된 이 와이퍼가 특허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기를 끌자 포드자동차는 이를 개량해 아예 자신의 특허로 등록해 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기술가치를 알아챈 컨즈는 심한 정신분열증세와 마지막에는 온 가족이 가난 속에서 목숨을 건 법정싸움 끝에 90년에야 1천20만달러(약80억원)라는 거액의 특허사용료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법정다툼 줄이어>
미연방배심원은 지난해 일본 미놀타카메라사가 미국하니웰사의 자동초점기술 특허권을 위반했다며 무려 9천6백35만 달러(약7백75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양측은 l만2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문건과 수천가지 자료를 제출하면서 한치의 양보 없이 맞붙었다.
특허분쟁은 이처럼 생명을 걸기도 하고 간단히 수십만 달러, 수백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돈싸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특허를 선점한 업체는 이를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전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으며 반도체·자동차등 기술개발비가 전문학적인 금액에 이른 업종에서는 특허광맥을 둘러싼 열기가 한층 뜨겁다.
미국은 91년 한햇 동안 1천6백80개의 일본 회사를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로 제소했으며 매년 벌어들이는 로열티만 2백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도 「제2의 진주만 공습」이란 표현처럼 거꾸로 지난해 미국 신규특허의 45.7%를 취득했다.
지난해 로열티로 전체 이익의 20%를 충당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는 「옛날(특허)을 먹고사는 기업」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오히려 공세적인 특허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피터 슈바이처는 최근 펴낸 『우방국의 스파이들』에서 산업스파이들에 의해 공짜로 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미국의 산업정보를 돈으로 환산하면 매년 1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 돈이면 만성적인 무역·재정적자도 충분히 벌충하고 남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에 이어 이스라엘·대만·한국을 「혐의국가」로 지목했다.
특허 전쟁은 한반도에도 상륙, 갓 움트려는 국내 기술의 싹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스파이 활개>
지난해 삼성전자와 금성사·금성일렉트론은 미국 개인발명가 레멀슨에게 무려 2천1백만 달러(약1백50억원)의 특허사용료를 지불했으며, 올해도 하이어트가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어 국내기업의 특허사용료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나마 돈을 받고 기술을 넘겨받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기술도입 건수는 89년 이후 감소추세이고 로열티의 절대액수도 91년을 고비로 줄어드는 것을 비롯, 돈을 주고도 기술을 살수 없는 선진국의 기술보호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특허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지난 5년 동안 특허 출원건수가 2만건에서 3만1천건으로 50%이상 늘어났다.
삼성전자의 경우 특히 팀장도 상무로 상향조정됐고 미국에서의 특허출원 건수도 90년 66건에서 91년 1백52건(59위), 지난해에는 2백49건(38위)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삼성전자 이용복 지적재산권 담당 상무는 『한국기업들은 아직 기술의 개발에만 치중할 뿐 특허관리등 「기술의 관리」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특허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송주현 특허청조사과장은 『미국이나 일본의 해외기술 의존도가 1.6∼8%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6.5%에 이르고 국내 PC업계의 로열티 부담률은 7%, 반도체는 9.4%, VTR는 이미 10%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기술자립이 미흡한 상태에서 외국과 특허분쟁에 휘말리거나 동남아·중국에 기술이 유출돼 모조품이 범람하면 우리의 가격경쟁력이 결정적 타격을 입게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최근 일부 반도체업체들부터 기술관리에 눈떠 핵심개발 인력들에 대해 외국 정보기관의 접근이나 해외 경쟁기업의 유혹·납치 등을 차단하기 위해 보디가드를 불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그나마 다행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핵심인력 보호도>
고 박정희대통령은 70년대 재미 핵과학자에게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기술적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과학자는 미국의 정보기관 몰래 극비 서류와 설계도면을 발목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은 뒤 일본 동경의 학회에 참가한 틈을 타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뒤 그는 일주일만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국내 특허관계자들은 이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고감도의 첨단기술과 특허를 목숨까지 요구하는 「기술전쟁」의 냉혹한 현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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