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구호품으로 「키치」의 멋 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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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정화씨(32·시각개발연구소 「가슴」대표)는 파자마 윗도리같은 셔츠와 한복바지같이 통이 넓은 빛 바랜 하늘색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셔츠는 동대문 구제품시장(아직도 미국 등에서 빈민구호용 의류가 들어와 팔리고 있다)에서 1천원에 산 것이고, 바지는 부인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의 옷은 대충 이렇다. 1천∼2천원까리 구제품이나 마음에 드는 옷감으로 구제품 옷을 본 삼아 만든 것, 부인이 만든 통 넓은 바지와 윗도리들. 대부분 다림질을 요구하지 않는 옷으로 큰 듯하게 보인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의 옷은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 주로 미국의 난민구호불자로 근근이 몸을 감싸던, 그래서 누구나 몸에 맞는 옷을 입지 못했던 전후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사람들은 가난했었고 그는 가난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씨는 현대미술가·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으나 자신은 「간섭자」라고 스스로를 명명한다. 그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단지 그의 작품을 통해 그를 대충 이해해볼 뿐이다.
최근 소위 문화가 어쩌구 하는 식자층 젊은이들은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곳처럼 돼버린 서울인사동 입구의 「스페이스 오존」과 신촌 이대 앞의 「올로올로」라는 카페가 바로 그가 실내장식을 한 곳. 철창·전선줄이 그대로 드러난 시멘트천장, 음울하고 유치한 색상으로 칠해져 거칠고 본능적이며 혼란스러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것들을 「키치(Kitcsh)」라고 말한다. 키치란 싸구려 복제 공예품·모방예술 등 저급예술을 가리키는 것. 그는 고급소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장판지로 생일카드를, 낡은 이불 천으로 연하장을, 싸구려 합판으로 고급의상실의 실내를 장식한다.
그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으나 전혀 주의를 끌지 못하는 소외된 물건들을 엉뚱하게 배치해 조화를 이끌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것들을 전면으로 등장시켜 소외된 현대인들의 심정적인 동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옷입기도 결국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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