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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함께 근무하는-김경동·이온죽 교수|스승·제자로 만난 「미부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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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흔히들 부부는 둘 중 한사람의 성격이 강하면 다른 한사람은 부드러워야 가정생활이 원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 말이 잘 들어맞지 않는 부부도 있는 것 같다.
서울대 김경동(58)·이온죽(49)교수 부부가 그렇다.
의아스러울 만큼 김 교수와 이 교수는 둘 다 매우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도 둘다 부드러운 면도 지녔다. 상대방에 대한 각자의 평가를 빌면, 김 교수가 「의지가 강한 성격이면서도 낭만적인 면모를 갖춘」반면 이 교수는 「아직도 수줍음을 많이 타고 겸손하지만 남자보다 더 대담한 추진력」을 겸비했다. 23년을 서로의 부드러움과 강함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의좋게 살아온 셈이다.
두 사람의 생활에는 무엇보다 둘만의 독특한 부부애와 한길을 걷는 사회학자로서의 동료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지금은 각기 사회학과(김 교수)·국민윤리교육학과(이 교수)에서 강의를 맡고 있지만 두 사람이 만난 것, 또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데에는 사회학을 「함께 공부한다」는 동료의식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료이기 전에 스승과 제자의 만남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경우다. 김 교수는 미시간 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여대에 첫 출강한 전임강사로, 또 이 교수는 김 교수로부터 「사회학개론」 수업을 받는 이 대학 사회학과 1년생으로 처음 만났다.
이 교수가 대학원에 진학, 조교로 김 교수의 일을 거들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그후 석·박사과정을 위해 미 코넬대에서 다시 만나 70년 부활절 날 코넬대 구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혹독하고도 치열한 전쟁과도 같았다.』결혼 후 두 사람이 석·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하며 두 아이까지 출산하는데 걸린 8년이란 시간을 가리켜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글쎄 버틸 수 있을는지…』
입술이 부르트도록 책과 씨름한 김 교수 뒤엔 그가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동안 학업을 중단하고 연구자료 정리·논문분석 등을 도운 이 교수의 정성이 깃 들어 있다.
두 사람 중 특히 여자였던 이 교수의 이력은 좀 독특한 편이다. 그는 김 교수가 박사학위를 마친 뒤에 비로소 석사학위를 끝냈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큰딸(21)을, 박사과정을 끝낸 뒤 작은딸(13)을 차례로 낳았다. 그는 또 석사과정을 마치고 큰딸을 키우는 동안 4년간 공부를 중단하기도 했다. 아이의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아이는 엄마 손으로 키워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87년 『너무 순한 아이』란 제목의 시집을 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김 교수는 그림·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직도 그는 틈틈이 시를 쓰며 서랍에 감춰(?) 둔단다.
86년『사회조사연구법』이란 교재를 사이좋게 함께 펴냈던 두 사람. 가정 일이든 학교 일이든 주제를 마다하지 않고 대화를 즐기는 일들이지만 요즘엔 시간이 없어 얼굴을 마주하기 어렵다며 안타까워한다. 일요일마다 함께 등산하기로 했던 약속이 계속 보류되고 있는 실정.
이제 김 교수는 전문분야를 산업·노동사회학, 이 교수는 북한·여성연구 쪽으로 굳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여성관련 사회개선연구기관을 운영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반면 김 교수는 동양사상과 서양학문을 접목하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시·소설을 맘껏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이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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