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좀 꺼주세요』무한공연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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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대학로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불 좀 꺼주세요』가 무한공연을 선언했다.
지난해 1월1일부터 시작돼 지난달 30일로 1년 반을 넘긴 『불 좀 꺼주세요』의 공동제작자인 작가와 배우들이 체력이 따라가는 한 이 연극을 영원히 공연키로 결정한 것. 창작극의 바람직한 재생산구조를 만든다는 각오로 시작된 『불 좀 꺼주세요』는 1년반 동안 12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숱한 새 기록을 만들었다.
우선 이도경(40)·정재진(40)·최정우(37)·이격희(38)씨 등 주요배역 4명이 교체 없이 무대에서 왔다는게 연극 공연 사상 처음 있는 일.
우리 연극계에 한 획을 그었던 『신의 아그네스』『에쿠우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은 더블캐스팅과 휴지기를 갖고 장기공연 됐던 작품들이어서 이들의 고정출연에 연극계 안팎의 관심이 한층 쓸리고 있다.
여주인공 이동희씨를 제외하고 최정우·이도경·정재진씨는 70년대 중반 「76극단」에서부터 배우의 길을 함께 걸었던 중견 배우들. 연기경력 20년을 바라보며 뒤늦게 경제적 안정은 물론 인기상승에 따른 배우역할을 새삼 즐기고 있다.
특히 대학로극장을 운영하면서 『빵』 『관객 모독』 『돈 내지 맙시다』등에 출연하기도 했던 정재진씨는 「대박」이 터진 이번 공연 덕분에 극장부채를 말끔히 갚고 극단사무실까지 새로 얻어 재도약을 다지고 있다.
열 여덟 번씩이나 옷을 갈아입는 1인8역을 맡아 제일 바쁜 이도경씨는 경상도 사투리로 관객들의 폭소를 휘어잡으며 새로운 성격파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최정우씨는 제도적 굴레에 얽매인 중년남성 역을 맡아 내면연기의 새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실은 이 최씨가 작가와 배우의 공동출자라는 새로운 기획형태를 낳은 장본인이다. 최씨는 작가 이만희씨(39)의 성공작 『그것은 작은 목탁구멍 속의 어둠이었습니다』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프로작가와 프로배우를 엮어 창작극 성공에 도전하는 벤처사업을 꾸몄다.
작가와 배우의 이 이색 컨소시엄은 장기공연을 통해 「작품성·흥행성의 적절한 결합」이란 연극계 내외의 평을 들으며 일단 성공을 거뒀다.
지난 4월초 교체된 다른 두 여성연기자와 달리 1년 반 동안 무대를 지킨 이추희씨는 90년 전국연극제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부산 연극계 출신. 부산에서 10년간의 교직생활을 청산하고 올라온 이씨는 한동안 사투리 억양으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이번 작품으로 대학로를 지키는30대 여성연기자로서의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들 배우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체력부족. 최정자·이도경·정재진씨는 모두 이명과 정수리 통증 때문에 나란히 한약을 복용하며 매일 저녁무대에 서고 있다.
연기의 깊이, 부드러운 흐름 등은 장기공연에 따른 부산물인데 이제 이들은 객석의 분위기를 보고 연기템포를 조절할 만큼 팀웍을 맞추고 있다. <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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