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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대통령보다 중요한 대통령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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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선을 4개월 앞둔 지금 대통령 후보를 내려고 애쓰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을 보면 딱한 마음이 앞선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네거티브 공세로 일관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이들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선된 대통령이 5년 동안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라를 얼마나 잘 이끌어 갈 것인가인데 이에 대한 답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뽑아 준 유권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대통령직(Presidency)을 수행할 준비가 얼마나 잘 돼 있느냐를 보고 싶은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이나 카터 대통령이 선거 6개월 전 당선이 불투명한 시기인데도 인사팀을 구성해 각료 후보를 고르고, 취임연설을 준비했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맡아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다른 나라와 국교와 조약을 맺고, 국가의 재정규모를 결정하고, 국민경제를 향상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다.

 이 일은 대통령 자연인이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직이 하는 것이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직이 한다는 것은 이에 관해 규정한 헌법부터 시작해 온갖 법률과 규정에 따라 책무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되 또한 중요한 것은 시대감각이다.

 나는 8월 6일부터 사흘간 중앙일보에 보도된 대통령 후보들의 자질과 심리를 평가하는 기획에 3개월간 참여했다.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2008~2013년의 시기와 가까운 미래에 세계의 변화를 읽으며 나라를 대표하고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가는 데 조타수 역할을 성실히 해낼 수 있는가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포도 재배에 비유하면 포도 맛만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기후·토양·환경 등 테루아(terroi)를 보려 했던 것이다.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니 후보들 대부분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취임사 일부를 공개하라는 주문에 두 후보(“나라 근본 바로 세우기-작은 정부, 큰 시장”-박근혜, “더 많고 좋고 넓은 평화, 성장, 민주주의”-정동영)만이 기대에 부응했다.

 국내산업 보호에 주력하겠다고 해 세계화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듯하고, 정책결정에서 직관보다 논리분석 쪽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래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준비도 미흡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아시아 지식 플랫폼’(이명박), ‘동북아개발은행’(박근혜), ‘동북아 에너지 네트워크’(정동영) 등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구체적 미래 준비의 표본이 될 수 있겠다.

 후보로서 보던 세상과 대통령이 되고 나서 보는 세상이 같을 수가 없기에 후보에게 기대했던 것은 좀 더 큰 그림, 넓은 세상, 먼 미래 등을 보고 있는지였다. 21세기 과학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를 염두에 둔 발전론이고 정책이어야 했다.

 이번 조사는 각 분야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거듭하며 조사틀과 분석틀을 만들어 지금까지 여러 조사가 밝혀 내지 못한 많은 내용을 후보자들에게서 받아 냈다. 적어도 대통령 후보자군의 평가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자부한다. 물론 이번 조사로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이 전부 밝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적 평가에 쏠리기 쉬운 유권자들에게 좀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근거는 제공했다고 본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21세기 리더십을 ‘공유하는 리더십’(shared leadership)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대통령이 누구와 함께 5년을 보내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개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참모가 이에 미치지 못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반대로 개인은 좀 부족해도 팀이 이를 보완하면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 대통령직과 팀을 함께 보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