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정계/정치헌금 수정론 대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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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민당 일변도 명분잃었다”중론/당보다 인물중심 지원 적극검토
일본 정국이 혼란에 빠짐에 따라 지금까지 자민당을 지원해온 일본 재계는 어느 정당을 지원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재계는 지금까지 「자유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한 보험료」라는 명분으로 자민당 일변도의 정치헌금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자민당 일당지배가 무너진 상황에서 앞으로도 자민당을 계속 지원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어나면서 궤도수정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재계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경단연은 아직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히라이와 가이시(평암외사) 회장은 최근 『당분간은 종래와 마찬가지로 자민당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히라이와 회장은 그러나 『신생당이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해,개혁세력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는 경단연의 자민당 일변도 지원이 이번 선거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시시하는 것이다.
재계는 자민당에만 정치헌금을 공급하게 된 것은 지난 55년 헌금창구로 경제재건간담회를 설치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이 간담회 사무국을 맡았던 하나무라 니하치로(화촌인팔랑) 경단연 사무총장은 각 기업의 이익 등을 참고로 헌금액을 배분한 「하나무라 메모」라는 청구서를 만들어 자금을 갹출했다.
그후 이 방식에 따라 정치헌금에 제공돼 현재 자민당에 연간 1백30억엔,민사당에 10억엔씩 배분되고 있다. 이외 선거 등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 추가지원 요청에도 경단연은 응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자민당에 대한 실망과 신세력에 대한 강한 기대감으로 경단연의 자민당 일변도 헌금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경영자 총연합회와 경제동우회 등 일본 경제 4단체중 2개단체 수뇌는 자민당일변도 헌금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설 태세다.
경제동우회 하야미 마사루(속수우) 대표는 23일 『정책대결을 벌이는 정권 교체가 가능한 2대 정당제도가 바람직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 그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주시하겠다』며 지원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동우회는 24일 유력재계인사 1천6백여명을 상대로 자민당 분열에 대한 평가와 자민당 일변도의 정치헌금수정 여부를 묻는 긴급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동우회는 기업인들로부터 『신생당 창당 등 보수신당의 출현으로 재계의 자민당 1당지시가 근거를 잃었다는 소리가 나옴에 따라 설문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일본 경영자총연합회 나가노 다케시(영야건)회장도 23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총리와 만나 『우리는 경단연과 입장이 다르다』며 신생당 등 보수 각당의 정책을 듣고 공감하는 정당과 정치가에게 헌금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간사이(관서) 경제연합회 우노 마사루(우야우)회장도 23일 『앞으로 자민당이외 정당과 인물에게 지원을 넓혀나가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중부 경제동우회는 『경영자의 90%가 자민당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와 밀접한 관계였던 일본토목 공업협회는 이번 총선에서 선거자금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재계의 이같은 자민당 등돌리기는 금융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자민당으로부터 2백50억엔의 대출요청을 받고,대출은 하되 액수는 절반이하로 깎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것도 경단연의 대자민당 선거용 임시헌금 방침을 확인한 후 대출해 주기로 했다.
얼마전까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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