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교본」저자가 합성음악 대가로 "금시초문"소리 만든다|신시사이저 음악인 이인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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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환갑이 다된 이인성씨(58)는 최근에도 줄곧 컴퓨터와 신시사이저 앞에서 2, 3일씩 꼼짝 않고 지새우기 일쑤다.
컴퓨터 화면에는 복잡한 숫자들이 나열되면서 그의 작업실에 층층이 놓인 신시사이저의 음원들은 0·1초의 오차도 없이 통제된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공학에 힘입어 유사이래 존재하지 않았던 소리들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겪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그는 원래 어려서부터 음악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었다.
기타를 구경하기도 어렵던 중학시절 학예회에 나가 훌륭히 연주를 해내기도 했고 부산고 재학시절 감명 깊었던 윤이상 선생의 음악 수업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집안의 만류로 부산대 정치학과에 진학했으나 음악을 떠날 수가 없어 졸업 후 곧 서울로 올라와 기타교본을 쓰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기타음악학원을 차린다.
『60년대 후반 청계천 5가에 있었던 「이인성 음악학원」을 통해 수많은 대중음악인들이 기타를 배웠었죠.』
나이든 음악인들 가운데 64년부터 13권 가량 나온 『이인성 기타교본』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는 당시 「패키지 쇼」라고 불렸던 미8군 쇼의 첫 개척자였다.
드럼·기타·베이스·가수·합창·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국의 음악 지망생들을 미군무대에 진출시킨 음악감독이자 매니저 역할을 했다.
그러던 이씨가 돌연 음악학원을 그만두고 70년부터 여러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음악학교를 만들고 싶었는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먼저 재정적인 기반이 필요하다고 느껴 사업에 뛰어들었지요.』
웬만한 술꾼이면 맛을 보았을 「서울 약주」 등을 비롯, 운수업·시멘트 제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벌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러한 사업 성공으로 70년대 중반 경남 진해의 모 중학교를 인수해 진해상고(현 진해중앙종고)와 진해남중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학교재단 성주학원의 이사장직에 있으나 아직은 소망인 음악학교 설립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서울예전 실용음악과에서 전자음악을 4년째 가르치고 있는 그는 여러 제자들이 각종 분야에서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기타학원 원장 시절에 못지 않은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음악을 잊을 수가 없었고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게 되면 「나도 할 수 있는데」라는 시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제 후배·제자들에 의해 대가로 존경받는 그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컴퓨터음악 연구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컴퓨터음악의 변천사와 맥을 같이한다.
70년대 후반 「무그」라는 전자악기가 점차 개량되고 여러 소리를 합성한다는 의미의 「신시사이저」라는 기기가 등장하자 그는 여러가지 별여 놓았던 사업을 줄여가며 전자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40이 넘어서 새로운 음악 분야에 도전한 것이다.
78년께 당시로서는 큰돈인 50만원을 들여 구입한 일본 「야마하」의 모델명도 기억나지 않는 신시사이저를 접하고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집안에 차려놓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 배열(작곡)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컴퓨터음악의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최초인 일본 NEC사의 「RCM98」시리즈를 주로 사용하면서 최근 대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IBM 호환용의 「케이크 워크」프로그램과 「아타리」컴퓨터에서 작동하는 「노테이터」프로그램도 일부 이용하고 있다.
외국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전자악기들을 닥치는대로 구입했으나 수년 전부터는 이러한 악기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이라기보다 기계조작(소프트웨어)의 발전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 신제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례로 그가 애용하고 있는 미국 엔소니크사의 「ESQl」이라는 신시사이저는 80년대 중반 개발되자마자 기능이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가 어려워 금방 단종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복잡한 기능만큼 완전히 새로운 음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해, 이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컴퓨터로 디지틀화되어 분석되는 음악은 「음악은 천재성에서 비롯되는 신비로운 것이다」 「소리의 뒤에는 영혼이 있다」는 종래의 인식을 해체시키고 있다.
음악의 작·편곡을 미술에 비유하자면 컴퓨터의 도움으로 시간상에서 조소하듯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통해 입력된 오키스트라 음악이 대형 구조물이라면 컴퓨터 조작자는 과거와는 달리 혼자서 그와 같은 대형 구조물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것이다.
컴퓨터 음악에 대해 일방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기계적인 투박함과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그는 『컴퓨터라는 악기(매체)의 탓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인간의 소프트웨어가 미숙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의 전자음악 창작인들 10여명으로 구성된 전농회의 회장으로 있는 그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인상적인 작품을 계속 내놓으며 매년 발표회를 갖고 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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