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계/물갈이설에 자구책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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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계실세 접근하면 미소작전/때아닌 지역구관리 열 올리기도
김영삼대통령의 15대 총선 「물갈이론」에 민자당내 민정계 의원들이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3일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본 한 민정계의원은 『당연하다』는 얘기와 함께 『답답하다』고 말한다. 개혁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대통령이 다음 공천에서 「개혁성」을 제1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잠재적인 「정치적 사형」 가능성을 예고하고 심각한 위기앞에서 뾰족한 자구책마련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요즘 민정계의원들 대부분은 적지않은 마음속의 불만을 이심전심으로 주고 받으며 서로 위로하기도하고 공분하기도 하는 가장 소극적인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보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현 단계에서는 가장 소극적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가장 적극적인 자구책이 될수도 있기에 주목된다.
한 골수 민정계 의원은 「물갈이론」이 나오자마자 『맘대로 되나 보자」는 반감성 불만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짧게 내뱉었다. 독기마저 느껴지는 불만표출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뿐이지 민정계의원들 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흔히 오가는 공감대라고 한다.
각종 모임에서 민정계 의원들은 우선 좌중을 둘러보는 사주경계부터 한다. 『민주계가 없다』고 확인되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슬슬 불만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급기야는 『누구 총대 멜 사람 없느냐』라는 얘기까지 진행된다는 것이다. 누구든 총대만 메고 나서면 전적으로 동조하겠다는 공감이다. 물론 여기에는 최악의 경우인 「탈당」까지 당연히 포함된다.
그런데 문제는 「총대 멜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 민주계 의원은 『무슨 자리에 우리(민주계의원)만 없으면 별 소리를 다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지금 탈당한다는 것은 「개혁 반대=수구」라는 낙인이 찍혀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며 민정계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엄연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같은 현실속에서 민정계가 이심전심으로 다지는 속내가 『두고보자』는 얘기다. 이는 두가지 의미를 담고있다.
하나는 『내년 전당대회에서 보자』는 합의다. 일단 올해는 개혁바람에 어떤 일도 도모하기 힘들지만 내녕이 되면 분위기가 우선 달라지리라는 기대를 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간헐적인 물갈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민정계가 수적으로 최다수일 것이라는 「수적 우월감」이 깔려 있다. 따라서 표로 결정나는 전당대회에서 뭔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좀더 원론적·소극적인 안도론으로 『3년후 막상 공천할때가 되면 지금처럼 일방적인 물갈이가 쉽지 않을 것』이란 기대다. 개혁드라이브의 맹위도 떨어질 것이고,3년동안 새 정부의 실책도 적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민주계 독주같은 비극적(?) 세력판도는 아닐 것이란 예측이다.
이같은 이심전심은 일단 미래의 가능성에 더 중점을 둔 것이기에 「잠재적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심리적 기저속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자구책은 「일단 개혁에 편승하자」는 색깔바꾸기와 「확실한 것은 지역구 유권자밖에 없다」는 지구당 집중관리다.
색깔바꾸기는 대개 초선의원 등 정치적 운신이 가벼운 사람들의 처신으로 주목된다. 사무총장직을 물러났지만 여전히 적지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최형우의원이 속초에 칩거하고 있던 지난 40여일간 『이 근처에 등산왔다가 들렀다』며 은근히 접근하는 민정계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색깔바꾸기의 한 단편으로 해석된다. 일부 민정계 의원들이 자신보다 나이는 적지만 실세로 불리는 민주계 당직자들에게 「님」자를 붙여가며 미소를 던지는 것에 대해 색깔바꾸기를 거부하는 민정계 의원들이 비아냥대는 것도 요즘 민자당의 색깔바꾸기 풍속도다.
가장 무난한 자구책은 지역구관리다. 「지역구의원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라는 명분 덕분에 「반개혁」이니,「색깔바꾸기」니 등의 따가운 시선을 어느쪽으로부터도 받지않고 짭짤한 실리를 챙기는 방안인 만큼 대부분의 의원들이 지역구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통상 선거 끝난지 1년밖에 안된 시점이면 지역구를 건성건성 관리해도 별 부담을 느끼지않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요즘 민정계 의원들은 대부분 지역구에 내려가고 없다. 통상 주말에 주례를 서기 위해 내려가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아예 주중에도 지역구에 내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민정계 의원은 지역구내 각 산악호와 함께 등산가는 일로 소일한다. 『돈도 적게 들고 친밀도를 높이는데 그만이다. 특히 선거철에 만나기 힘든 젊은층과 만날수 있다는 점도 유익하다』며 「최선의 위기관리」라고 말한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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