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권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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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신작 『권력의 변환』에 관해 언급하면서 권력의 역사적인 원천을 다음 세가지로 분류했다. 그 첫째는 폭력 또는 군사력 경찰력 따위 물리적인 힘이고,둘째는 경제적 부,셋째는 지식·선전·정보·첩보활동 등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권력의 역사적인 변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폭력과 경제력이 점점 지식인의 힘에 의존되는 현상,따라서 본질적으로 지식이 권력을 좌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이란 물리적인 힘이나 부 따위와는 관계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민주적으로 분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권력의 민주화를 뜻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권력」과 「민주화」는 서로 모순되는 말이다. 권력이란 타인을 복종시키는 지배의 개념인 반면 민주화란 권력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뜻이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속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권력이란 말이 있을 수 없다. 다만 국민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법과 제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도 언필칭 민주주의국가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권력자와 권력기관이 엄존해온 까닭을 새삼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토플러가 말한 원시적 권력지배 속에 머물러온 것이다.
그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온 권력자들의 부정과 비리가 요즈음 백일하에 하나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이한 작태가 눈에 띈다. 막강한 비리권력자들이 쫓겨나고 쇠고랑을 차는 사태에서 그들이 소속해 있던 권력기관의 「권위」의 훼손을 걱정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들에게 언제 권위가 있었던가. 있었다면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가 있었을 뿐이다.
권위란 자신들이 내세워서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인정하고 받드는 데서만 비로소 창출되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자 또는 권력기관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위의 부재를 의미한다.
곪은 환부를 도려내는데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권력기관이 아닌 권위있는 국가기관으로 다시 태어나는 진통이야 참고 반길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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