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주일대사 때 ‘초당 외교’ 이원경 전 외무장관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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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원경 전 외무부 장관이 3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85세. 경북 경주 출신인 고인은 경북고를 나온 뒤 일본 도쿄대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고인은 정통 외교관이면서 체육인이기도 했다. 언론계·재계에서도 활동하면서 포용력과 함께 중후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1948년 6급 외무주사로 외무부에 첫 발을 디딘 고인은 50년대 후반 방교국장(수교 교섭 담당)과 의전실장 등을 역임했다. 60년 주 일본대표부 참사관을 지낸 뒤 고인은 합동통신사 상무가 돼 언론계에서 활동한다. 5·16 직후 외무부 차관으로 발탁돼 일하다 합동통신 부사장(63년)으로 되돌아갔다. 60∼70년대엔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아 스포츠외교의 초석을 다졌다.

74년 문화공보부 장관에 이어 81년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국장,집행위원을 맡아 바덴바덴에서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82년 체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중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이범석 외무부 장관이 서거하자 제20대 외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외교력을 강화하려면 이원경 장관이 적임자”라고 발탁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경북고 선후배 사이인 이 전 장관은 노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88년 주일 대사로 부임했다. 고인은 주일 대사 시절 ‘초당 외교’의 선례를 남겼다. ‘여소야대’ 시절인 88년 8월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가 도쿄을 방문하자 한·일관계에 대해 상세한 브리핑과 함께 만찬을 했다. 야당 총재에 대해 주요국 대사가 이런 대접을 한 것은 당시로선 전례가 없었다. 김 총재를 비롯한 민주당 관계자들도 놀랐다고 한다. 폭넓은 인맥과 뛰어난 흡인력 때문에 고인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후원회장을 맡았다.

사무관 시절 고인을 모셨던 이호진(외시 8회) 외교역량평가개발센터 소장은 “중후한 인품과 뛰어난 열정으로 젊은 외교관들의 사표가 됐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동진·동섭·혜림 씨 등 2남 1녀와 사위인 남중수 KT 사장이 있다. 발인은 5일 오전 7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02)1688-7575.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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