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인질사태 '미국 책임론' 차단 나선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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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안보전략연구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인질사태를 반미에 이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바우처 미 국무부 차관보의 2일 발언은 인질 사태 장기화에 따라 한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미국 책임론'을 더 이상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발생한 한국인 인질 사태를 전면에 나서 다룰 입장이 아닌 데다 설령 나선다 해도 속시원히 해결할 방도가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한국인이 자꾸 미국을 '해결사'로 여기고 압박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인질 두 명이 잇따라 살해되면서 "이번 사태는 미국의 책임"이라는 억지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한국 담당 관계자들은 이런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2001년 한국 대선 직전에 불었던 반미 바람이 다시 불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시 두 명의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지면서 확산된 반미 촛불시위는 대선 정국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학습효과를 그때 분명하게 얻었다. 인질 사태 보름 만에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의 책임은 (미국이 아닌) 탈레반"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은 이와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창의적 해법' 운운하며 한국 국민의 심리를 달래려는 자세도 보였다. 그래야만 한국의 오해가 풀리고, 함께 이성적 대응을 해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날 오후 워싱턴을 찾은 국회 5당 대표단을 만난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정무차관은 "한국 국민의 걱정과 원망, 고민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미국은 과거 인질 교환의 부작용을 고려해 협상 불가 원칙을 지속하고 있지만 다른 접근 방법도 있다"고 말한 것이 그런 고민을 읽게 한다. 그는 "미국은 한국 및 아프간 정부와 100% 정보를 공유하면서 또 다른 창의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테러범에게 양보 불가' 원칙을 고수하되 실제로는 한국 및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간 협상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인질 석방을 도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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