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명예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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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35면

「개 눈에는 뭣만 보인다」는 우스개처럼 딸아이가 커서 결혼 가시권에 진입하고 나니까 관심의 대상은 괜찮아 보이는 젊은 남자들뿐이다.
기회가 닿아서 『자네 결혼했나』라는 물음에『결혼했다』고 하면 괜히 괘씸하고 배신감(?)까지 느끼며 『아직』이라면 흥분하는 버릇도 생겼다.
『괜찮은 놈 없대?』
『글쎄 말야. 사귀는 남자는 없나봐.』
『나타나겠지, 뭐.』
『다 때가 되면 가겠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대학졸업 후 막 직장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뭐 그리 급하고 좋은 일이라고 서둘러?』
집사람의 핀잔을 뒤로하고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비 온 뒤끝인지라 밤 공기는 아주 맑았다.
그러니까 딸아이가 고3때 나는 새벽마다 가방을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나서며 미안해 했다. 언젠가 버스를 타며 딸아이는 『아빠, 나 이뻐?』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지.
참 세월도 빠르다.
저 여리고 순진한 애를 어떻게 시집보내나, 괜한 걱정을 미리 하고 있다. 「딩동」초인종 소리와 함께 딸아이가 귀가했다.
『꽤 늦었구나.』
『응, 오늘 언니 한 분이 그만 두었어.』
『왜?』
『다음달 결혼이래.』
고단한데 잠이나 잘 것이지 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다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딸아이를 불렀다.
『이리 와 봐, 응.』
『왜, 아빠?』
『글쎄 와 보라니까.』
옆에 온 딸아이를 꼭 껴안으며 『아이 이뻐 우리 딸…』하는데 딸아이가 나를 완강하게 뿌리치며 발딱 일어서더니 『아빠, 아빠는 날 아직도 어린애 취급해. 정말 싫어』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 큰애한테 주책은….』집사람의 눈흘김을 뒤로하며 나도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당황한 채 침대에 누워있자니 눈물이 흐른다.
마구 ! 펑펑 !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두르느라 딸아이와 둘이서 아침을 먹게 됐다.
『아빠, 나 이뻐』하면서 가벼운 뽀뽀 세례를 보낸다.
『짜식, 니가 고3이야. 다 큰 게.』
나의 명예회복에 집사람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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