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걸릴까”숨죽인 정가/검찰 「자가수술」에 “다음은 우리…”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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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게 왔다” 정치권 「고통분담」 찬바람 걱정/민주선 “해방후 처음” 환영속 내심은 불안
슬롯머신업계 유착세력 파문이 마침내 현직 고검장급 3명의 사퇴라는 폭탄을 검찰조직에 떨어뜨리자 여야 의원들은 『다음 차례는 정치권이 될 것』이라고 초긴장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의 이같은 불안감은 검찰이 자체사정이후 정치권과 언론계 연루자도 반드시 「손볼 것」이란 판단때문이다.
○…『민자당의원 몇명이 슬롯머신 업계와 관련이 있다』는 끈질긴 소문때문에 민자당에서는 전국구의원 2명이나 연루된 동화은행 비자금수수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슬롯머신업계 유착사건이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동안 『누구는 관계없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관련설에 시달리던 동료의원들을 변호해주던 의원들도 마침내 슬롯머신 태풍이 검찰을 발가벗기는 상황으로 이어지자 『정치권에도 올것이 오고야 말겠구나』며 더이상 이 문제를 입에 올리려 하지 않고 있다. 한 고위당직자는 『비록 여론과 청와대의 질타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검찰이 스스로의 팔다리를 잘라낸 마당에 무엇을 주저하겠느냐』며 『검찰이 조만간 조직내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짓고 정치권 등에 칼날을 들이댈 것으로 본다』고 단정했다.
이 당직자는 특히 『오랜 기간 정덕진씨 형제에게 도움을 주고 정치자금을 받아온 의원들은 물론이고 자칫 선거때 한두차례 도움을 받은 의원들도 만약 정씨 형제가 입을 연다면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며 이 사건의 희생자가 의외로 늘어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검찰조직을 잘 아는 한 의원도 『검찰이 차기 검찰총장후보 3명을 한꺼번에 사퇴시킨만큼 검찰이 이제는 초선의원 한두명이 아니라 중진의원 몇명을 노릴지 모른다』며 검찰이 입은 피해와 같은 수준의 「고통분담」이 정치권에도 불어닥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걱정스런 분위기와 함께 검찰의 수사태도에 대한 불만도 의원들 사이에 떠돌고 있다.
검찰출신 모의원은 『지금까지의 검찰수사를 지켜보면 정씨 형제가 찍어내는 사람들만 당하고 있는 것 같다』며 『검찰과 언론도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살아온 정씨 형제가 자신들의 진짜 비호세력은 숨기고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찍어주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불만은 슬롯머신 태풍이 정치권에 불어닥치는 시기가 임박했다는 의원들의 공통된 위기의식앞에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검찰 자체비리수사에 대해 국정조사권 및 특별검사제 발동까지 요구해왔던 민주당은 고검장급 3명의 사퇴소식에 『획기적인 조치』라고 환영하면서도 속으로는 찜찜해 하고 있다. 대다수 의원들은 이번 조치가 윗물맑기운동의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제살을 도려낸 검찰이 독한 마음으로 엄정한 법집행을 할게 틀림없어 소문으로 떠돌던 당내 모모의원들이 다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그럴 경우 야당의 도덕성도 여당과 마찬가지로 손상을 입게되어 더욱 설자리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조세형최고위원은 『검찰이 다쳤다고 조건반사차원에서 대응하기보다 늘 일관된 법정신에 의해 향후 비리를 척결하기 바란다』고 주문.
이해찬의원 등 소장파의원들은 『사정이 검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해방이후 처음있는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정치권에 대한 사정이 오히려 미흡한 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검찰 자체사정에 대한 이같은 외형적 평가와는 달리 내심 고민도 많다.
검찰의 자체사정 종결은 정치권 사정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 팔을 스스로 자른 검찰이 이제 거리낌없이 칼을 들이댈 것임은 뻔한 이치다. 이는 바로 정치권 사정에 있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정가나 검찰 주변에선 김대중 전 대표의 측근 인물 등 몇몇 의원들의 연루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정덕진씨 형제가 야당에도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가 포착돼 수사의 단서가 됐다는 말도 들려오고 있다.
더욱이 야당 의원들이 주먹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로 이 역시 민주당을 불안케 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정치권 사정이 본격화하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을 것 같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이 정화돼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며 『그러나 특정 사건과 관계없는 순수한 정치자금 수수까지 문제 삼는다면 살아남을 의원이 몇명이나 되겠느냐』고 우려했다.<이상언·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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