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협상단 - 탈레반 직접 만남 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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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인질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지 15일째를 맞은 2일 한국 정부 협상단과 탈레반 측의 직접 만남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아프간 주재 강성주 한국대사를 비롯한 한국 협상단이 이날 탈레반 지도부가 있는 가즈니주에 도착했다고 미라주딘 파탄 가즈니 주지사가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 내부에서는 여성 인질 처리 문제를 놓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이 인질들과 맞교환하길 원하는 동료 수감자의 면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팍티카주로 끌려간 한국 인질들의 상태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음은 본지의 현지 통신원 알리 아부하산(가명)의 4신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가즈니주 탈레반 원로회의에서는 16명의 여자 인질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온건파와 강경파가 팽팽히 대립했다. 이런 와중에 2일 중요한 상황 변화가 확인됐다. 아부하산은 "가즈니주 탈레반 지도자인 물라 사비르가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종교지도자.원로에게 여성 인질 처리 문제에 대해 '파트와(이슬람 부족 원로회의의 종교적 명령)'를 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18명에 이르는 원로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며 "결론은 이틀 정도 뒤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는 "탈레반이 지역 원로의 뜻을 다시 존중하겠다는 신호"라며 탈레반이 당분간 유화 국면을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탈레반은 새 협상시한을 당분간 제시하지 않을 것이며,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인질 추가 살해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이 수감자 맞교환에 왜 그토록 매달리는지도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아프간 정부 측에 풀어 달라고 요구한 수감자 8명의 명단에 대해 아부하산은 "다로 칸이란 인물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은 탈레반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 사령관으로 이번 납치를 현장에서 지휘한 물라 압둘라 부사령관의 직속 상관이다. 납치를 주도한 그룹과 직접 관련돼 있다. 칸은 약 한 달 전 카라바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헬기를 동원한 미군들에게 체포돼 갔다고 한다. 그 후 압둘라가 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칸은 현재 바그람에 있는 미군 기지에 수용돼 있어 아프간 정부가 단독으로 칸을 석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따라서 그의 석방 문제가 앞으로 인질 석방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들은 독일 인질을 잡았을 때도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한국인들이 납치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8일 독일인 인질 2명이 카불 북부 와르다크 지역에서 피랍됐다. 이때 탈레반은 이 납치를 주도한 그룹에 독일 인질들과 칸의 맞교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독일인 납치 주도 그룹은 이를 거절했다고 아부하산은 전했다.

아부하산은 "탈레반과 한국 정부 간 대화에 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탈레반 측이 주카불 한국대사관과 직접 대화하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협상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부하산은 "1일 오후까지는 계속 탈레반 가즈니주 최고 지도자 물라 사비르, 부사령관 압둘라와 접촉이 이어지다가 하루 이상 접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화가 이렇게 오래 불통된 적은 없다고 했다. 아프간 군 또는 다국적군 측이 방해 전파를 쏘고 있거나 탈레반 지도부가 위치 노출을 우려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부하산은 분석했다. 그러다 한국시간 2일 오후 11시를 넘겨 접촉이 됐으며, 이때 압둘라는 "한국 대사관 측과 직접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현재 한국인 인질은 가즈니주에 없으며 자불.칸다하르.헬만드 등 아프간 내 여러 주에 나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아부하산은 "헬만드주의 경우 다국적군의 공세가 강화돼 최소 60명의 탈레반 대원이 사망한 지역"이라며 "칸다하르주도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가즈니주에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디의 발표는 인질들이 있는 곳을 헷갈리게 하려는 교란전술인 것 같다"며 "인질 중 3명 정도를 멀지 않은 팍티카주로 데려간 것이 정확한 정보"라고 말했다.

최지영.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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