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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조의원은 돈세탁 귀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러번 헹군뒤 사채시장서 할인 “추적불가”
「검은돈」이 거래될 때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명계좌를 만들고 현금과 수표를 바꿔치기하는 「돈세탁」(money laundering)은 대입부정사건 수사때에도 등장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검찰 등 수사기관도 웬만한 돈세탁은 일단 추적에 나서면 대부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 상태다.
그러나 최근 검찰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정치인들의 돈세탁은 워낙 기상천외해 수사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동화은행사건과 관련,내사를 받아온 이원조의원의 돈세탁은 그중 「백미」라고 검찰은 전한다.
동화은행은 가명계좌로 수표를 발행하고 인근 은행에서 교환하는 방법으로 일차 세탁된 돈을 이 의원에게 전달했다.
이 의원측에 전달된 이 돈은 다른 정상적인 수표들과 뒤섞여 가명계좌로 다른 시중은행에 입금된뒤 소액수표들로 나뉘어 인출되고 다시 정상적인 자금과 뒤섞여 또다른 은행들로 분산 입금된다.
이 정도의 돈세탁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추적은 가능하다. 문제는 여러차례의 세탁을 거친 돈이 사채시장이라는 「블랙홀」을 거친다는 것이다.
사채시장으로 흘러간 검은돈은 사채업자들로부터 5% 정도로 할인(속칭 와리깡)을 받아 다른 수표들과 교환된다.
할인은 원래 지불기일이 되지않은 어음에 대해 선수금을 제하고 나머지를 현찰로 주는 것인데 사채시장에서는 현금과 마찬가지인 수표에대해서도 할인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채업자들은 이같은 돈이 「검은 돈」임을 잘알고 있어 이서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
검찰은 동화은행이 다른 정치인들에게 전달한 돈은 어렵사리 찾아냈지만 이 의원의 돈은 사채시장이라는 벽에 부닥쳐 대부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검찰은 이같은 점으로 미뤄 이 의원의 돈을 전문적으로 세탁해주는 「자금관리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가 박철언의원에게 준 뇌물의 경우도 보통수준의 돈세탁은 아니다.
정씨는 아예 오래전 발행된 헌수표들을 모아 박 의원에게 전달했고 여러사람의 손을 거친 헌수표들이 다시 가명계좌로 입금되고 분산될 경우 추적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수사관계자들은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지 않고 은행측이 거액예금자들에게는 앞장서 돈세탁을 해주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한 아무리 수사기법이 발전해도 검은돈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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