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 의회가 질타한 일본의 ‘군 위안부’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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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하원이 어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997년 처음 제출됐으나, 일본 정부의 집요한 로비에 막혀 좌절됐던 ‘본회의 결의안 채택’이 10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결의안은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 제국군대의 ‘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공식 시인,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역사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우익세력의 온갖 로비와 협박을 이겨내고 결의안을 채택한 미국 의원들의 혜안과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결의안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뒤틀리고 오도된 인식을 준열하게 통박했다. ‘군 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범죄’로 못 박았다. ‘관련 정부 문서가 없다’ ‘강제성은 없었다’는 등의 일본 정부 주장은 거짓이라고 꾸짖은 것이다. 결의안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군 개입을 일부 인정한 1993년의 ‘고노 담화’를 일본 관리들이 부인하려 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또 ‘일본 교과서는 위안부의 비극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범죄를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취해온 졸렬한 대응도 지적한 것이다.

결의안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기존 입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동안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 사죄하라는 한국·중국의 요구를 억지와 궤변을 동원, 거부해 왔다. 그러고도 별 탈이 없이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급변됐다. 자신의 안보를 의탁하고 있는 최상의 동맹국인 미국의 민의가 일본의 후안무치를 질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선 상당한 곤혹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은 이번 결의안 통과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결의안 채택을 막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다. 미국 신문에 ‘위안부 동원에 강압이 없었다’는 내용의 광고까지 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다. 이는 전술상의 역효과 차원을 넘어 그동안 일본이 부려온 억지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국제사회의 지도국가로서의 역량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제사회에서 지탄을 받아왔다. 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함으로써 과거를 털어버리지 못하는가. 이번에는 일본이 결의안을 제대로 이행,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모든 ‘과거사의 속박’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주변 국가 국민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면서 어떻게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