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중독 환자 고스톱 다음으로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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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단도박회」회원 30%차지/회사원·학생 등 대부분 젊은층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가 정·관계의 비호세력을 등에 업고 세력을 키워오는 동안 슬롯머신의 유혹에 걸려 돈과 명예,가족과 인격까지 버린 피해자들이 해마다 늘어왔다.
도박중독자들의 자가치료모임인 「단도박회」회원들을 보면 슬롯머신이 어느덧 고스톱과 함께 우리사회 도박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단도박회는 84년 미국인 신부 백모씨(62)가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한국인들을 돕기위해 미국의 도박증치유모임인 GA(Gamblers Anonymous=익명의 도박자들)를 본떠 만든 모임으로 현재 서울·대구·광주 등 6곳에서 9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도박에 전 손을 씻느라 애쓰고 있는 이들 회원들은 공무원·의사·주부·학생 등 다양하고 손댔던 도박의 종류도 포커·경마·내기바둑 등으로 갖가지지만 고스톱 중독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슬롯머신 중독자들도 3분의 1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직 교수로 고스톱에 중독되어 7년전부터 이 모임에 나와 자가치료를 하고 있는 K씨(54)는 『처음 모임에 나갈때만 하더라도 회원들중 슬롯머신 중독자는 한두명에 불과했는데 최근 회사원·학생 등 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나 회원의 30%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슬롯머신은 고스톱과 달리 기계를 상대하기 때문에 「남한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죄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서 일단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이때문에 뒤늦게 후회하며 검은 마음을 씻으려해도 다른 도박보다 치료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 이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이다.
5년전 점심시간에 호기심으로 들른 직장부근 호텔 슬롯머신장에서 10만원의 「잭팟」을 맛본후 이 유혹때문에 월급은 물론 회사공금까지 손대 나중에 집까지 날려버린 P씨(35)의 경우는 단도박회 회원이면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패가망신끝에 부인의 손에 끌려 단도박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임을 들락거리다 결국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완치율이 2%도 안된다」는 도박중독증세의 심각성이 입증된 셈이다.
회원 개인비밀을 보장하느라 모임장소를 밝히지 못하는 단도박회의 상담전화번호는 서울 295­1728.<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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