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납치극 총책은 가즈니주 탈레반 1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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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아프가니스탄에 잡혀 있는 22명의 한국인 인질 사태를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보도하기 위해 30일 알리 아부하산(가명)을 특별 통신원으로 위촉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현재 미국 유력 언론의 통신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탈레반을 취재하다 납치된 적도 있다. 풀려난 뒤 그는 당시의 인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금은 탈레반 지도부와 직접 접촉이 가능하다. 탈레반 취재로 여러 차례 특종도 했다.

아부하산은 30일 한국인 납치극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가즈니주 탈레반 최고지도자 겸 사령관인 물라 사비르(사진)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물라 사비르의 사진도 본사에 제공했다. 납치 이후 인질의 분산 배치와 이동, 감시는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가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즈니주는 한국인 23명이 19일 납치된 지역이다.

다음은 아부하산이 29~30일 사비르.압둘라와의 통화에서 들은 것이라며 알려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사비르는 아프간 정부 협상팀과의 접촉 상황에 대해 그때마다 보고받고 전략을 지시하는 등 전반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사비르는 이 지역의 주요 문제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슈라(부족 원로회의)'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탈레반이 몸값을 원한다는 소문이 자꾸 돌고 있는 데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 이런 소문이 아프간 정부 관리들이 지어낸 음모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루머가 계속된다면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그는 30일 "한국 정부 협상단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일부 인질의 석방 가능성도 내비쳤다. 직접 접촉을 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프간 정부 협상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프간 정부는 전날 탈레반 지휘관으로 활동하다가 2001년 전향한 국회의원 '물라 살람 로케티'를 포함하는 협상팀을 새로 꾸렸다. 하지만 사비르는 로케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 협상팀을 거부했다.

사비르는 "인질 석방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며 "아프간 정부 관리들은 우리가 제시한 수감자 석방 요구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상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명단을 바꿨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당초 바그람 미군 기지에 수감돼 있는 동료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수감자에 대해서는 아프간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보고, 아프간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카불 근교 '풀리차키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들로 명단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8명의 석방 요구자 명단이 제시됐으며, 이들 중 4명은 가즈니주 출신 탈레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 협상단원인 마무드 가일라니는 "아프간 정부 입장은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할 수 없다는 것인데, 탈레반이 이를 계속 고집해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 협상팀은 여성을 인질로 잡고 있는 행위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여성들을 조건 없이 먼저 석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탈레반은 이를 일축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사비르는 현지 통신원에게 "인질들이 분산 수용돼 있지만 탈레반 지도부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질들을 민가에 분산해 놓은 이유에 대해 "구출작전에 대비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들이 주로 여성이기 때문에 이슬람 교리상 남성 대원들이 날마다 이들의 얼굴을 접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최지영 기자

◆물라 사비르=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 많은 전과를 올려 탈레반 내부에서 지도자의 위치로 올라섰다. 탈레반 내부에서의 지위를 비롯한 인적 사항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8년 탈레반에 반대하는 북부동맹과 전투를 치르다 한쪽 팔을 잃었다. 그래서 탈레반 대원들이 통상 소지하는 AK-47 자동소총 대신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총을 휴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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