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새해 作心三日 하신 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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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와 하트.다이아몬드.클럽'.

트럼프 카드의 네 가지 무늬다. 스페이드는 죽음과 철학 등 지성을 상징한다. 하트는 사랑, 다이아몬드는 돈, 클럽은 건강을 뜻한다. 대개 같은 숫자라면 스페이드>하트>다이아몬드>클럽 순으로 우열이 결정된다. 카드의 세계에선 스페이드가 으뜸이며 클럽이 꼴찌인 셈이다.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과연 새해를 맞이해 어떤 무늬의 카드를 첫손에 꼽을 것인가.

최근 통계청의 '2003년 한국의 사회지표'조사 결과 한국인의 최대 관심사는 로또 열풍과 10억 만들기 붐에도 불구하고 건강으로 밝혀졌다. 한국인의 44.9%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으며 돈(24.5%).학업(7.4%).직장(6.5%).자녀교육(4.6%).결혼과 연애(2.5%)의 순으로 나타났다. 1998년 조사에 비해 건강은 36.7%에서 44.9%로 높아진 반면 돈은 30.5%에서 24.5%로 떨어졌다.

이러한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기자는 우리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싶다.

첫째, 한국인의 수명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통계청이 밝힌 가장 최신자료인 2001년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을 보면 여성이 80세, 남성도 72.8세나 됐다. 남녀 평균 76.5세다. 여기에서 착각해선 안 되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이른바 기대 여명은 평균수명에서 자신의 연령을 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엔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숨진 사람의 수명까지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65세 여성이라면 15년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18.4년을 더 산다. 2001년 태어난 아기 10명 중 5명은 80세까지 살며 2백명중 3명은 1백세까지 산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뜻이다.

둘째,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다.최근 수년간 발기부전치료제와 대머리치료제.비만치료제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신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인간의 희로애락 등 감정까지 조절해 주는 약물까지 등장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는 물론 보도블록의 금을 밟지 않고 걸어야 마음이 편한 강박장애나 과도한 부끄럼증 등 인간의 성격 문제도 약물치료가 가능하다. 백혈병의 글리벡, 폐암의 이레사 등 부작용을 줄이고 효능을 높인 항암제도 나타났다. 여기에 현대의학의 흐름을 뿌리째 뒤바꿔 놓을 혁명적 신기술인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와 인체지놈사업을 이용한 맞춤형 신약 개발이 우리가 살아 숨쉬는 당대에 실현될 것이 확실하다. 장기가 부족해 생명을 잃거나 알레르기 질환 등 부모에게서 대물림되는 숙명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건강은 비록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에겐 수백원짜리 자판기 커피도 맛있다. 그러나 위궤양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수만원짜리 고급 커피도 즐겁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두 발로 걸어다니기만 해도 즐거운 반면 병약한 사람은 벤츠를 타고 다녀도 즐거움을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건강이 소중하지만 막상 오늘 하루 건강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려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답변이 궁할 것이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인 셈이다. 이 같은 모순이 비롯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당장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물이나 공기와 비슷하다고 할까, 있을 땐 모르지만 없을 땐 절실히 소중하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으리란 막연한 생각도 한몫 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무심코 피운 담배가 매일 한 갑씩 10년이면 당신의 사망률을 두 배 가까이 높인다. 30분 넘게 일주일에 4차례 이상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뇌졸중과 심장병.당뇨 등 한국인 세 명 중 두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성인병을 극복할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선 시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일부터 배려해야 한다. 건강이야말로 '시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다. 새해 결심한 금연이나 운동이 지금쯤 작심삼일로 끝날 지경에 이른 분이 많을 줄 안다. 지금이라도 고삐를 다시 당겨주기 바란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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