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음표들이 있다 아이가. 더 딱딱 끊어서 확실하게 해야 된다.”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린 자리에 앉는 심우진(17)군의 목소리가 힘차다. 낡은 바이올린을 옆구리에 낀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자, 96마디부터 다시 해보자.” 심 군은 제1 바이올린 파트를 연습시키는 중요한 역할이다. 보육원 아이들 60명으로 이뤄진 이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5번을 집중 연습하고 있었다. 부산 소년의집은 가톨릭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이다. 가족이 없는 3~18세의 남자 500여 명이 서로 의지하며 생활한다. 1979년 만들어진 이 오케스트라는 부산의 명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피아니스트 김대진, 바리톤 최현수가 이들과 한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그냥 미사 반주하라고 만들었는데 얘네들이 자꾸 상을 타오는 거예요.” 오케스트라를 총괄하는 김소피아 수녀가 기특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79년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 현악 부문 우수상부터 시작해 90년 최우수상 등 아이들은 목표한 상을 끝내 따와 소년의 집에 걸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아이들이잖아요. 음악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찡하죠.” 김 소피아 수녀가 덧붙였다.
‘정명훈과 함께하는 소년의 집 기금마련 음악회’를 앞두고 소년의 집 학생들이 연습실에서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다.[부산=송봉근 기자]
하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음악의 맛을 안 아이들은 고집스럽게 음대로 진학한다. 더블베이스 수석을 맡고 있는 박재선(17)군은 “부모님 뒷바라지 없이 혼자서 음악을 전공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며 “하지만 음악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니까…”라고 말했다.
요즘은 자원봉사를 하는 연주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오케스트라 결성 초기에는 한두 명의 음악 전공자가 오케스트라 전체의 레슨을 맡기도 했다. 이들의 연주 모습은 다음달 20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볼 수 있다. 공연 수익금은 모두 소년의 집에 기부된다.
부산=김호정 기자<wisehj@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