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꿀벌과 재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꿀벌은 각종 과일나무·농작물·꽃들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꿀을 얻는다. 그리고 몸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런데 꿀벌의 습격이 무섭다고 벌을 모두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될까?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는 등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재벌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그 일가나 종업원만 손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기업생태계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꿀벌을 죽이면 아름다운 꽃과 열매는 얻지 못하고 풀만 무성해지듯이 재벌을 죽이면 사기업은 줄고 공기업만 무성해지기 쉽다. 사실 공기업은 이미 ‘신이 내린 직장’이라 할 정도가 되었다.

 사기업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취직이 안 돼 아예 포기하는 사람, 취직해도 실직 불안에 떠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일류 사기업에 근무하는 직원 중에 공기업 취직 준비를 하는 사람이 늘어 간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언론인은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른바 ‘이태백’이 삼태백, 사태백까지 돼 인생을 포기하는 40대가 증가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꿀벌은 해충과 식물 병을 옮기거나 과실과 꽃을 파괴하는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고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재벌 역시 족벌 경영, 경제력 집중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꿀벌과 재벌 모두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신(神)은 꿀벌에게 꿀을 얻기 위해서는 각종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 결실을 보도록 했다. 시장경제는 기업에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에 많은 도움을 주도록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포스코의 이윤이 많아진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을 만들어 우리 자동차나 조선회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만약 포스코 제품이 부실하다면 우리 자동차·배·가전제품도 모두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기업생태계나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꿀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또한 다양하다. 다른 예를 보자.

 ‘기업인은 민주화 인사다’고 말하면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고급차를 만들어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델T’라는 값싼 차를 만들어 일반인도 손쉽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학자 해럴드 에번스는 『그들이 미국을 만들었다』에서 포드야말로 진정한 민주화 인사라고 했다. 미국의 민주화에는 기업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경제민주화가 있어야 정치민주화가 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전화·TV·컴퓨터·자동차 등을 만들어 대중화에 앞장선 우리 재벌기업 경영인들도 민주화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꿀벌은 인간에게 로열젤리·밀랍·화분(花粉), 약용 벌독(毒) 등의 혜택을 준다. 재벌 역시 제품·서비스 이외에 민주화 등 많은 혜택을 준다. 현대전에 필수인 최첨단 군함인 이지스함을 포함해 각종 군사장비도 생산하고, 스포츠팀 운영을 통해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를 양성하며, 학교나 연수원을 통해 각종 인재도 양성한다.

 꿀벌의 적은 새·말벌·잠자리·거미 등 많다. 이 중 천적은 말벌이다. 재벌 역시 적이 많다. 천적도 많다. 우리 10대 그룹 소속 277개사의 자산 총액이 미국 GE 한 회사보다도 작다. 외국의 재벌은 그 규모가 방대하다. 그런데 꿀벌은 상대방의 벌통을 파괴하거나 잡아먹는 일이 없지만 기업 중에는 헤지펀드 등 기업 사냥에 나선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말벌 같은 존재다.

 꿀벌을 많이 키우면 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천에 아름다운 꽃과 과일이 많아진다. 기업도 많이 키우면 키울수록 일자리가 많아지고, 주식값도 올라가는 등 근로자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더욱이 외국의 말벌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킬 수 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