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뚫린 검문­수색(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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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군과 경찰의 해이한 복무태세와 허술한 대응으로 한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탈영병의 총기 광란이 벌어졌다. 난동을 저지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차례 있었으나 그때마다 치밀한 대응을 못해 번번이 놓쳐버렸다. 이런 태세와 대응으로는 언제 또 어떤 탈영병사건이 벌어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군의 사병관리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난동을 벌인 무장 탈영병은 입대 직전에 학생을 상대로 금품을 뜯다 구속된 전력이 있고 입대후에도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탈영한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사병이 소속부대의 무기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군의 사병관리수준이 이 정도인가.
탈영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도 적어도 서울진입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탈영사실을 너무도 뒤늦게 안데다 검문도 허술해서 범인이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 승합차를 몰게하고 서울로 가는동안 네곳의 검문소를 무사통과했다. 이런 검문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연락체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검거에 나선 헌병에 대한 분명한 지시도 없었다. 서울을 관할하는 수방사에는 범인이 서울에 들어오고 난뒤에야 연락이 되었는가 하면 사전에 명확한 지침이 없어 범인을 발견하고도 명령을 받느라 놓쳐버렸다. 경찰은 경찰대로 상부에는 보고조차 하지 않은데다 출동한 경찰도 범인 총기난사에 몸을 피하기 바빴다.
마치 군과 경의 허술한 체제를 사회에 고발하기 위해 일부러 말썽을 부린듯 단계 단계마다 허점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무장탈영병이었기에 망정이지 무장간첩의 침투였다면 이런 대응체제로 어쩔뻔 했나.
군과 경은 탈영에서 검거까지의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해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건 자체와 관련해 해당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도 따라야 하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난동을 저지하지 못한 원인을 밝혀 무장 탈영의 재발을 막는 일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탈영의 이유부터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병영생활상의 문제가 그 이유라면 그에 따른 개선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고 입대전의 성향이나 전력이 문제로 드러난다면 문제가 있는 입대장병에 대한 군의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단순히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최근의 정치과도기에 따른 군·경의 기강해이와도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도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무장탈영병의 난동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선 방위와 수도의 치안에 허점이 생겼다는 큰 문제가 된다. 설사 이번 사건이 군·경의 기강해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기회에 복무자세를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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