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경보…현역들 "나 떨고 있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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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의원 물갈이 바람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17대 총선 불출마 도미노가 확산되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서도 '바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7일 네명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도 전국구 장태완 의원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호남 중진 용퇴론'이, 열린우리당에선 '비리 연루 의원 공천 배제론'이 나와 정치권 전체가 물갈이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모습이다.

*** 한나라, 어제만 4명 불출마 선언

◇한나라당=정창화.김동욱.목요상.이주영 의원이 새롭게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전날 같은 입장을 밝힌 김종하.오세훈 의원까지 포함하면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역구 의원은 벌써 14명에 이른다. 전국구 의원을 포함하면 20명이다. 앞으로도 영남권의 K.Y의원 등 5~6명이 불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창화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별히 남긴 것도 없이 너무 오랫동안 정치판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물러나기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그래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비운 자리를 보다 훌륭한 후배가 꿈과 희망의 정치로 가득 채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의 국회의원으로서 한없는 무력감과 비겁함에 허탈하고 부끄러워한 적도 수없이 있었다"며 "이제 병상의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했다.

목요상 의원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생각"이라고 했고, 김동욱 의원은 "이제 후배에게 길을 터줄 때가 됐다"고 했다. 초선의 이주영 의원은 경남지사 보선을 위해 총선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자 당내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다. 최병렬 대표가 '공천 혁명'을 위해 물밑에서 다각도로 손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소장파가 앞장서 물갈이 분위기를 조성한 것과 관련해 崔대표와의 공모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신경식 의원은 "당 지도부와 젊은 의원들의 인적 쇄신 여론 조성이 중진 의원들에겐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불출마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열린우리당, 퇴진대상 명단 돌기도

◇열린우리당=비리 연루 의원들에 대한 공천 배제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천 탈락 대상 의원들 이름까지 거명되는 실정이다.

한 당직자는 "J.C.S의원은 퇴진시켜야 한다는 말들이 돌고 있다"고 했다. 지도부는 8일 상임중앙위원회의를 열어 윤리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여기서 비리 혐의가 있는 의원들의 해당(害黨)행위 여부를 조사한 뒤 출당 등의 징계를 내려 사실상 공천에서 탈락시킬 것이라고 한다.

*** 민주당, 호남 중진 용퇴론 나와

◇민주당=7일 중앙위원회의에서 장성민 전 의원이 호남 중진 퇴진론을 제기해 시끄러웠다.

張전의원은 발언권을 얻자마자 "공천 혁명 없이는 당의 생존이 위태롭다"며 "호남 중진들부터 과감히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왜 호남만 갖고 그래"(이윤수 의원)라는 고성이 나왔고, 조순형 대표도 "앞으로 발언은 가려서 해달라"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호남 출신 중진들을 겨냥한 용퇴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김현종.구해우.신현구씨 등 호남지역 출마를 희망하는 신인들은 성명서에서 "호남의 민심은 인물 교체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위에서 호남 물갈이론이 표출된 바로 그 시간 기자실에선 장태완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있었다. 그는 "정치권이 엄청난 불신을 받고 있는데도 자신의 영달과 입지만 생각한다면 정치발전은 요원하다"며 "모두들 남을 비난만 하지 말고 어떻게 국가를 위해 헌신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갈이 바람이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자 당 지도부는 중앙위에서 지구당위원장 총사퇴라는 카드를 내놨다. 개혁적인 조치로 무차별적인 '바꿔' 목소리를 제어하겠다는 의도지만 그것만으로 물갈이 파고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정호.박신홍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jongta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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