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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말문 튼 정해숙 전교조위원장(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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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별복직 있을수 없어”/협상 하다보면 자연스레 접점 찾을것/투쟁적이미지 반성… 교장단 설득 바빠
지난 8일 오병문교육부장관과의 「역사적 만남」을 위해 교육부를 방문한 정해숙 전교조위원장(56)의 손에는 큼지막한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보따리속의 내용물은 교육현장과 교육제도전반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대한 엄청난 분량의 각종 연구·조사자료의 목록표 등.
정 위원장은 이 자료가 전교조해직교사들이 교육개혁과 참교육현실을 위해 지난 4년동안 생계의 위협속에서도 밤을 새워 작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교단에서 쫓겨나 학교현장에서 참교육을 실천할 수는 없었지만 평소 몸으로 느낀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수 있을까 나름대로 궁리해봤다며 교육발전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해서 그동안 꽉 막혀있던 전교조와 교육부간의 말문이 자연스럽게 터졌다.
해직교사 복직을 위한 교육부와의 실무회담을 준비하면서 이들의 교단복귀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교장단을 일일이 설득하느라 여념이 없는 J 위원장을 만났다.
마침 15일 새벽 경북지역 해직교사이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시집을 펴내기도 한 정영상씨(37)가 심장마비로 숨져 전교조사무실에서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었다.
­해직교사들의 근황은 어떻습니까.
『일부 전업한 교사들도 있지만 대부분 전교조지부나 지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물론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부끄럼없는 교사로서,교육개혁의 선봉으로서 긍지를 지니고 있지요.
최근 복직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모두들 교단에 돌아가 학생들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정 선생님까지 모두 5명의 동료가 교단복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까워요.』
­해직교사 복직문제가 일단 물꼬를 텄는데 현재 진행상황은 어떻습니까.
『지난 8일 오 장관과의 만남 이후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어요. 교육부 관계자들이 경원대 입시부정에 매달려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는 것같아요.
또 교육부의 실·국장 및 과장들에 대한 대폭적인 인사이동 때문에 당분간 실무접촉이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그러나 오 장관이 해직교사복직문제 해결에 분명한 의지를 갖고계신만큼 조만간 실무회담이 개최돼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교육부는 계속 「조건부 선별복직」을 고집하고 있고 전교조는 「무조건 전원복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인데 전교조의 양보선은 어디까지입니까.
『이미 밥그릇까지 빼앗겼는데 더이상 양보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물러서라지만 바로 뒤는 절벽이에요. 이제 양보는 정부가 할 차례입니다. 선별복직은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모두가 교육현장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 쫓겨났는데 누구는 되고,누구는 안된다는 것은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권위주의적인 발상이지요. 문민정부는 달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협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접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복직을 전제로 합법화 요구를 유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먼저 오해의 소지를 없앤다면 전교조 해체는 절대 있을수 없습니다. 다만 해직교사가 복직되고 현정부의 교육개혁작업이 착착 진행된다면 합법화요구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한국교총도 국제교원노조에 가입해 있고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는만큼 머지않아 자연히 합법화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장단들이 무조건 복직을 반대하는 건의서를 정부요로에 보내는 등 교단원로들이 해직교사 복직논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사실 13개 교장단의 건의서 내용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때 깊은 절망감도 느꼈고요. 아무래도 대화가 부족하다싶어 조를 편성해 교장단을 방문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교장들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위에서 시켜 어쩔 수 없다」는 곤혹스런 처지도 이해가 되고요. 물론 몇몇은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골을 메우기 위해 계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또 조만간 한국교총 이영덕회장과의 대화도 계획돼 있어요. 한국교총측에서 시간·장소를 결정해 통보해주기로 했습니다.』
­한달후면 전교조창립 4주년이 되는데 자체평가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우선 1천5백명 교사의 해직이란 희생이 있었지만 교육여건은 많이 개선됐다고 자부합니다.
또 학교현장과 계속적인 유대를 통해 참교육의 씨앗을 상당히 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록 과거 정부의 여론조작 때문이긴 하지만 국민들에게 거칠고 투쟁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데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오로지 참교육실현 하나뿐입니다.』
참교육은 「더불어 사는 인간이 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의한 정 위원장은 손자를 두명이나 둔 할머니로 『후배들의 고생을 그저 구경만 할 수 없었고 그들의 권유를 끝내 물리치지 못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합정동 「따르릉 선생님」합숙소에서 기거하고 있는 정 위원장의 소망은 하루빨리 교단에 서고 광주에서 건축업을 하는 남편(60·사업)의 밥도 손수 지어주는 것이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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