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부 감추기 급급한 민주당/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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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당지도부가 「깨끗한 아이들」 한테 꼼짝도 못하고….』
『전국구의원의 특별당비로 당이 유지되어 왔는데 왜 지도부는 변명을 안해주는가.』
14일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도 거른채 장장 6시간가까이 계속된 민주당의 의원·당무위원연석회의의 분위기를 드러낸 대표적 발언들이다.
재산공개후유증을 다룬 이날 회의에서 언론으로부터 혐의를 받은 의원들은 지도부와 재산공개대책위원들에게 활화산같은 불만·비난을 토해냈다.
주택7채보유 등으로 이름이 오르내린 정기호의원(청주을)은 『위선자·2중인격자·도적놈이라는 항의전화 1백여통을 받았다』며 『당지도부에서 명예회복을 시켜줘야한다』고 지도부를 몰아세웠다.
과다부동산보유 및 「벌집」임대로 말썽이 난 이경재의원(구로을)은 『벌집은 2층 침대가 있는 것이고(내소유의) 동자동주택방은 벌집이 아니라 정상적인 방』이라는 색다른 「벌집론」을 내세워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장석화의원(영등포갑)은 『대책위원장(이부영최고위원)이 사과하고 당지도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의원들은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해명하면서 아울러 보호막을 쳐주지 않았던 지도부를 계속 성토했지만 지도부는 모두 꿀먹은 벙어리 모습이었다.
소위 「깨끗한 아이들」로 구성됐던 재산공개대책위도 『당지도부가 명예회복과 구제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부영) 『당이 전체적으로 공동책임을 지고 해결하자』(박계동)고 「대책위」에 쏟아지는 화살을 비껴가기에 급급했다.
6시간여 회의의 마무리에 나선 이기택대표 역시 『보수주의자라는 이야기까지 들어가며 법적하자가 없는 의원들의 희생을 막았다』며 여론으로 부터의 방패역을 「충실」(?)하게 수행했음을 변명했다.
한 소장의원은 『6시간여의 회의를 지켜보면서 야당이 여당보다 덜 개혁적인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또다른 양심적 중진의원은 『민주당은 「여야 모두 땅색깔은 하나」라는 여론의 호된 질책이 무얼 뜻하는지도 모르는 집단같다』고 자괴했다. 그러나 이처럼 겸허한 「자기반성」과 「읍참마속」을 요구한 의원들은 소수였다. 그대신 이날의 민주당회의는 구구한 책임전가와 「명예회복」의 공허한 주장만을 반복,「야당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국민의 소박한 기대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환부는 감출수록 커진다」는 사실이 작금의 민주당에 가장 걸맞은 「조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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