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F1관전기] 샛별 해밀턴‘못 말리는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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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해밀턴

절반이 지난 2007년 F1 시즌의 변화가 크다. 지난해 챔피언 르노는 중하위권으로 몰락했고 맥라렌-메르세데스(이하 맥라렌)와 BMW의 돌풍이 경기마다 거세다.

 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가 빠진 올 시즌 최대 수확은 맥라렌의 루이스 해밀턴(22·영국)을 얻었다는 것이다. F1 최초의 흑인 선수 해밀턴은 데뷔전을 비롯, 올해 전 경기에서 시상대(3위 입상)에 오르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 신인 선수가 2경기 연속 폴투윈(예선·결승 모두 1위)과 9경기 연속 시상대에 오른 것은 역사상 해밀턴이 처음이다. 그는 F1 입문 네 달 만에 가장 강력한 챔피언 후보가 되었으며 사상 최고 레이서의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중남미에서 건너온 할아버지를 둔 해밀턴은 레이싱을 하기에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지만 맥라렌팀 론 데니스 감독은 그를 열세 살부터 키워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서로 만들었다 .

 

힘차게 질주하는 해밀턴의 F1머신

데니스는 해밀턴을 발굴한 것을 두고 ‘마이 페어 레이디’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자(오드리 헵번 분)는 하층 소녀였지만 반년간의 상류층 교육을 통해 최고의 숙녀로 거듭난다. 전문가들은 2년 후 해밀턴의 연봉이 1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

  해밀턴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은 9년 만에 종합 챔피언 타이틀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경기 출전만 하면 잔고장으로 중도 하차하기 일쑤였던 맥라렌 경주차(머신)는 올 시즌 한 번도 리타이어(중도 포기)한 경우가 없고 타이어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 마모가 심한 트랙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맥라렌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인 페라리는 한동안 주춤했지만 여름 들어 기세가 올랐다.

 연봉 400억원으로 F1 최고 보수를 받는 키미 라이코넨(28·핀란드)도 최근 두 경기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상승세를 주도했다. 현재 드라이버 성적은 4위지만 올해 가장 많은 세 번을 우승했다. 페라리와 라이코넨의 고민은 머신 스피드는 빠른데도 잔고장 때문에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밀턴이 우승횟수는 적지만 라이코넨에 18점을 앞서 있는 것도 잔고장 없이 항상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최악의 팀은 일본 혼다·도요타다. 두 팀은 F1에서 가장 예산이 풍부한 편에 속한다. 도요타는 무려 연간 5000억원 이상을 퍼붓는다. 그런데 혼다는 아홉 번 경기에 단 1 점을 땄다. 머신 개발 총괄에 파격적으로 일본인 슈헤이 나카모토를 앉혔는데 공교롭게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도요타 역시 일본 총감독이 영입된 후 성적을 내지 못한다. 합리적이고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모터 레이싱의 정서와 위계를 중시하는 동양적 조직관이 충돌을 일으켰다는 평가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레이싱 팀이 늘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아니다. 모터 스포츠는 말 그대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모터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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