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비리 터질까 전전긍긍/다시 얼어붙은 민정계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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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혁­경제위축론」 거론하다 “움찔”/내사대상자들은 강도탐색전 한창
12일 오후 민자당의 민정계의원이 황급히 석간 중앙일보를 들고와 『대통령이 진짜 이렇게 얘기한 거요』라고 물었다.
김영삼대통령이 「골프금지령」을 내리면서 「부정부패척결이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논리를 반박했다는 보도에 귀를 의심하는듯 했다. 「사실보도」임을 확인한 그 의원은 『박정희·전두환대통령때도 이렇게까지는 안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모두 귀를 의심
침묵해온 민자당,특히 민정계의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재산공개 파동도 지나 개혁분위기가 조금 풀릴까 했더니 대통령이 직접 참회의 눈물론으로 다그친데 이어 다시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또 민자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김 대통령의 의중전달자 김덕룡정무장관은 『총재(대통령)가 중앙상무회의에서 「진정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당의 도덕적 불감증을 지적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개혁의 부작용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대통령의 의중을 다시 한번 못박았다.
드디어 김종필대표는 『대통령의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깊은 반성의 계기로 삼자』며 『다시는 대통령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주변을 잘 살피자』고 목소리를 낮췄다.
지난 일요일 대통령의 말뜻을 잘못알고 골프장에 나가 경고를 자초한 자신의 처신이 다소 쑥스러운듯 했다.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성급한 개혁=경제위축론」은 민정계 의원들이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개혁에의 불만을 간접적으로 피력해온 논리다. 『개혁을 빨리 끝내야 한다. 공직자들은 물론 기업인들도 납작 엎드려만 있다. 계속 채찍만 들고 뛰어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의 바람이 경제활동마저 얼어붙여 버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고 자초해 머쓱
재산을 공개했더니 과거의 일도 처벌하고 환수까지 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고위공직자들이나 기업인들이 의욕이 생기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침체할 수 밖에 없고 경제가 회생하지 않으면 김영삼정부는 끝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것이란 논리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같은 주장을 「타당한 건의」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기득권층의 근거없는 「개혁 반발」 논리로 일축해 버렸다. 대통령은 부정부패척결이 경제위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위축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경제를 살리는 처방」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시적인 경제위축을 빌미삼아 개혁자체를 훼손하는 언행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자당의원들은 조금 열려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덕룡장관은 나아가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고 나면 이미 재산을 공개한 의원들도 변동사항을 보완·재신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겁을 한번 더주었다. 최형우사무총장도 같은 얘기다. 재산공개를 적당히 넘길 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당히 축소·누락시켜 놓고 속으로 『후유』하다간 큰코다칠지 모른다는 경고다. 개정될 윤리법은 재산은닉의 출구가 됐던 동산마저 공개하도록 하고 불성실신고일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처님 손안에”
한 의원은 『이미 한 재산공개는 윤리법개정이후 재산공개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윤리법이 개정되고 거기다가 실명제마저 되어봐라.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인데 어떻게,뭘 감출수 있겠는가』며 충격의 강도에 지레 떤다. 이같은 경악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과 직결된 것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권력의 주변서 돈과 명예를 쫓던 대다수 민정계의원들은 그같은 정치판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과거 비리도 내사해 걸리면 가차없이 처벌한다는 말에 그야말로 망연자실하고 있다. 내사대상에 오른 의원들은 온갖 연줄을 동원해 내사의 강도를 탐지하고 있다. 해당되지 않는 의원들 역시 자신의 과거행적중 화근이 없나를 돌이켜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개혁과 여론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여전히 침묵하며 낙담하고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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