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임정 74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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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간다간다 나는간다 너를두고 나는간다 잠시뜻을 얻엇노라 까불대는 이시운이 나의등을 내미러서 너를떠나 가게하니… 나간다고 설어마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어느곳에 가있든지 너를생각 할터이니 너도 나를 생각하라 나의사랑 한반도야」.
『안도산전서』에 실려있는 「거국가」의 가사내용이다. 나라를 일제에 강탈당한후 많은 사람들이 한을 품고 고국을 떠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적혀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삶의 터전을 외국으로 옮긴 한민족은 무려 1백50만명에서 2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들 교민과 망명객들이 해외 한국독립운동의 주축을 이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간도·연해주·하와이 등 한국 교민들의 집결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상해가 임시정부의 수립지로 선정된 것은 최적의 입지조건 때문이었다. 하와이는 우선 거리가 멀었고,만주 등지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큰데다가 해당국의 간섭도 있었던 반면 상해는 세계교역의 중심지로서 국내와 미주에서의 독립운동을 연결시켜주는 구실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3·1운동후 국내외에서 1천여명의 독립운동지도자들이 집결해 있었음에도 프랑스 조계에는 일본관헌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는 이점도 있었던 것이다.
국내의 한성정부와 노령의 대한민국의회,그리고 상해임정이 통합되어 단일 임시정부로 정통화되고 독립운동을 통합하기 시작한 것이 1919년 4월13일이었다. 3·1운동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임시정부의 수립에는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민주공화체제,곧 국민국가의 탄생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다는데서 가장 큰 의의를 찾아야할 것이다. 그것은 상해임시정부 성립축하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오,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동포여 소래쳐서 만세 불러라…」
상해임정 수립 74주년에 때맞춰 이봉창·윤봉길의사 등의 의거모의가 이뤄진 유서깊은 임정청사가 옛모습 그대로 복원돼 13일 오전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보경리 현장에서 복원기념식을 가졌다. 3·1정신의 참뜻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와 전통을 오래오래 되새기게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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