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퇴장' 오세훈의원의 정치 참회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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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지난 4일 부친을 찾았다. 17대 총선 불출마 결심을 알리기 위해서다. 부친은 깜짝 놀라며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吳의원의 결심이 굳은 걸 확인하자 "뜻대로 하라"면서 "정치를 끝내는 마당에 여러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진 말라"고 했다 한다. 중진 물갈이론을 강력히 주장해온 아들에게 신중한 처신을 주문한 것이다.

吳의원은 5일 밤 부인 송현옥(서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씨와 두 시간 이상 대화하면서 기자회견문인 '참회록'을 가다듬었다. 宋씨는 한나라당의 변화를 촉구한 원문의 마지막 대목을 보고 "한나라당을 바꾸게 하는 게 어떻게 목표가 되겠느냐. 당신의 선택은 정치권 전반을 바꾸게 하는 것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吳의원은 그 대목을 "저의 불출마가 정치권 전반에 '내탓이오'하는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로 바꿨다.

吳의원이 6일 아침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宋씨는 "참 잘 결정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작성한 '참회록'에 대해서도 "잘됐다"고 말했다 한다. 참회록엔 "지난 4년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부끄럽다"는 등 정치활동에 대한 뉘우침이 담겨 있다.

"먼저 정치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 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 사이 동화돼 간 무감각함이 부끄럽고, 미숙한 자기확신을 진리인 양 착각한 무지함이 부끄럽고, 세계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심 무시하고 배척한 편협함이 부끄러우며,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운 자신의 입으로 역사에 공과가 있음을 애써 무시하고 선배들께 감히 용퇴를 요구한 그 용감함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흔들리는 나라를 살리려면 정치를 바로세워야 하고, 정치를 바꾸려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하고, 한나라당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이었음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제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고 합니다."

吳의원은 기자들에게 "총선 불출마가 대단한 결정은 아니지만 많은 선배가 스스로 거취를 돌아보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해 대선 6개월 전에 제왕적 총재제를 폐지하는 데 앞장섰던 일"이라고 밝혔다. "당시 80~90%는 대통령에 당선된 상태나 다름없던 이회창 총재를 상대로 싸웠다. 그땐 중진들에게서 '난파선의 쥐새끼'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끝내 뜻을 관철한 데 대해선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로선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 공부할 계획이며, 그 이후엔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부인 宋씨는 "양식 있는 사람이 정치하기 힘든 풍토가 가슴 아프다"며 "앞으로 평범한 사람이 정치하는 세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갑생.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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