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스테인리스로 키운 ‘길산 3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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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과거 길거리 가로등 기둥은 모양도 투박하고 녹도 잘 스는 강철 소재 일색이었다. 그러다 2003년부터 달라졌다. 스테인리스 파이프로 만든 제품이 나오면서다. 반짝반짝 빛이 나고 녹도 슬지 않아 거리 분위기가 바뀌었다.

 길산파이프 ㈜는 이런 스테인리스 구조관을 제조·가공하는 충남 논산의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 정길영(59·사진) 사장이 1991년 세운 길산정밀이 모태로, 지난해 2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 회사 제품은 건축 내외장재, 기계 부속, 가로등 기둥 등으로 두루 쓰인다. 이 분야에서 국내 생산능력(2006년 1만4000t) 1위로, 80여개 사업자 가운데 1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정 사장이 가지고 있는 ‘길산’ 돌림의 회사는 두 개 더 있다. 97년 대전에서 설립한 길산스틸㈜과 2005년 경기도 양주에 만든 길산에스티㈜다. 길산스틸은 스테인리스판 제조 및 판매가 전문이고, 길산에스티는 스테인리스 제품 유통 전문 회사다. 회사마다 대표가 따로 있어 독립 경영을 하고 있지만, 3개사는 사실상 하나의 회사다. 정 사장과 특수 관계인이 길산파이프 지분 95.77%, 길산스틸 지분 75.0%, 길산에스티 지분 55.1%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사를 하나씩 세웠는데, 인사 숨통을 터주고 경쟁도 붙이기 위해 합병하지 않고 그대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이들 3개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684억원, 당기순이익은 30억원이었다. 올 목표는 매출 1000억원, 당기순이익 50억원이다.

 대전 대성고등학교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친 정 사장은 현재의 스테인리스 관련 사업이 13번째 직업이다. 지금은 스테인리스스틸클럽 회장을 맡으며 지역 철강업계의 대표적인 경영자로 자리 잡았지만, 예전에는 주류도매업·운송업·주택건설업 등에 손대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정 사장은 88년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스테인리스 제품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는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건설경기가 호황일 때였다. 그는 “현장에서 보니 철강 제품보다 깔끔하고 내구성도 뛰어나 쓰임새가 많을 걸로 봤다”고 회고했다. 이 무렵에는 삼미가 스테인리스 제품을 수입·가공해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었지만, 틈새시장이 있으리라고 본 정 사장은 89년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때마침 포스코가 원자재 국산화에 성공해 제품을 만들 여건도 무르익었다.

 정 사장은 한눈 팔지 않고 스테인리스 파이프와 관련 제품 생산에 매달렸다. 무리한 투자를 삼가고 현금 중심의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다. 그런 그에게 외환위기는 도약의 계기가 됐다. 당시 이 분야 140여개 회사 가운데 110개가 쓰러졌지만 정 사장은 꿋꿋이 버텼다. 그는 “거래처가 문을 닫고 수요도 절반으로 줄었지만, 공급은 더욱 많이 줄어 어부지리로 호황을 누렸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여파가 여전했지만 정 사장은 투자를 늘렸다. 97년 매출이 100억원인 회사가 98년에 공장 증축과 설비 증설에 30억원을 썼다. 회사 시스템도 첨단으로 바꿔 99년 자동 생산집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2001년에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도 구축했다. 기술 개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2003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216.3㎜ 대구경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개발·생산했다. 이 파이프가 전국의 가로등 기둥 재질과 겉모습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다. 스테인리스 파이프는 지름이 작아 가로등용 구조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고정 관념을 깬 제품이었다.

 정 사장은 “요즘 재고가 늘고, 저가 중국산 제품이 쏟아져 들어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스테인리스 파이프의 핵심 원자재인 니켈값이 폭등할 조짐이 보여 물량을 많이 확보해뒀는데, 얼마 전부터 거꾸로 값이 폭락해 평가손을 입고 있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방 건설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국산 제품까지 쏟아져 나와 걱정이다.

 정 사장은 이런 어려움을 타개할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수출액은 10억원으로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올 들어 무역팀을 새로 꾸렸고, 해외 홍보도 시작했다. 정 사장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권에서 주문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해외 진출을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보다는 상장 준비가 더 급하다는 것이다. 내년쯤 상장을 목표로 올 가을에는 3개 회사를 합병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성공적으로 기업 공개를 마무리지어 회사가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논산=남승률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이 회사에 관한 좀더 상세한 기사는 포브스코리아 8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길산파이프는
설립: 1991년
대표이사: 정길영
본사: 충남 논산시 부적면 감곡리
자본금: 20억원
직원수: 50명
주요 제품: 구조용 스테인리스 파이프, 폴리에틸렌 파이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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