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커리어 상담 ①] ‘나’라는 상품을 시장가치로 따져보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호 21면

지난 12일 오후 서울 강남의 엔터웨이 파트너스 사무실에서 박운영 부사장(왼쪽)이 서미경 과장에게 커리어 상담을 해주고 있다. [신동연 기자]

●고민: 전직과 창업, 학업의 갈림길

서미경(33)씨는 직장생활 8년차인 미혼 여성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정보통신(IT)기업과 직물업체를 여러 곳 전전했다. 직원 수가 10~30명 정도의 소기업에서만 활동했다. 영어에 능통한 데다 영업 일을 좋아해 줄곧 해외영업을 맡아왔다. 특히 일년에 절반 정도는 베트남 출장을 다닐 정도로 이 지역에 발이 넓다. 능력도 인정받아 현재 과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연봉도 5000만원대로 소규모 직물업체의 중간간부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회사 사장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회사를 옮기는 걸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서다. 섬유가 아니라 유망 업종이라면 외국으로 따라가거나 동종 업계 다른 기업으로 옮길 생각도 있지만 업종 자체가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것도 고민이다.

처음엔 열심히 경력을 쌓아 창업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차제에 다른 업종의 무역회사로 전직했으면 싶은데, 무엇이 유망 업종인지도 알 도리가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도 구해봤지만 다들 자기네도 어렵다고만 한다. 신문이나 인터넷 등도 열심히 뒤적거려 보지만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경영학 석사(MBA)를 받으면 나을 것 같고 주변에서도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 많아 해외유학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진단: 그녀의 강점과 약점

박 부사장은 서 과장의 강점은 영어와 베트남, 일에 대한 열정이라고 진단했다. 영어는 비즈니스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베트남은 현지 중소 도매업자들의 네트워크를 상당히 구축해놓아 지역전문가로 통할 정도다. 미혼 여성이지만 홀로 출장을 다니면서 다른 거래처의 바이어를 뺏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도 많다. 세계 어느 지역에 혼자 떨어뜨려 놓아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

반면 약점도 많다. 우선 전직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 잘나가는 여성들은 보통 35~40세에 인생의 정점기를 맞는다. 이때 뭔가를 이뤄놓아야 45~50세에 2차 정점기를 맞을 수 있다. 남성들은 이보다 약간 늦은 40~45세가 1차 절정기라는 게 박 부사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서 과장은 1차 절정기를 불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의 나이다.

이미 해오던 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따라서 박 부사장은 서 과장에게 MBA는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유학을 갔다 오면 전직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외국계 기업으로 전직하기도 힘드니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라고 충고했다.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박 부사장은 외국계 기업에서는 여자 나이 33세면 보통 매니저급이며, 30대 후반에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여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외국계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여성의 경우 보통 30세 이전이다. 나이가 더 들어 전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전에 외국계 기업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박 부사장은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 과장이 그동안 직원 수 10명 남짓 되는 소규모 기업에서만 일해온 것도 단점이다. 전직 때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 일했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큰 기업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박 부사장은 직원이 100명 이상인 기업으로 전직하겠다는 생각도 버리라고 말했다. 자기 마케팅(self-marketing)이 부족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차분하고 단조로운 톤의 목소리는 특히 영업맨에게는 큰 문제다. 첫 대면 때 ‘일을 잘한다’는 인상을 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커리어 관리를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으로 했다는 점도 거론됐다. 서 과장은 과거 몇 차례 전직을 했지만, 이때 회사의 비전이나 자신의 미래 모습보다는 사장이나 직속상사가 호감이 간다는 이유 등으로 옮겼다.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지만 인정에 매여 그러지도 못했다. 박 부사장은 “평소 3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그림을 그렸더라면 이런 전직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해법: 베트남에서 승부하라

박 부사장은 서 과장이 고민하는 세 가지 길 중 두 가지를 지웠다. 창업은 아직 멀었고, 공부는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남은 건 직물 이외 업종으로의 전직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의 기업으로 옮길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기업으로 갈 수 있을까.

어떤 업종의 기업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박 부사장은 “직물에선 떠나되 베트남엔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라”고 충고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서 과장은 오랫동안 베트남에서 활동해왔고, 그만큼 네트워크도 구축했다는 점을 평가했다. 나중에 다른 지역으로 바꾸더라도 지금은 베트남을 끌로 파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영업할 사람을 찾는 기업이 많은 반면 이 지역 전문가들은 상당히 드물어 전직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유망 업종은 베트남의 바이어들에게 물어보라고 권유했다. 가령 서 과장이 거래하고 있는 베트남 도매상의 취급물품 목록을 뽑아보라고 충고했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 현지에서 뭘 필요로 하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옌타이(煙臺)에는 현지 한국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와이셔츠 제조업체도 있다는 것이다. 박 부사장은 “이렇게 현지 수요를 바이어별로 리스트 업 하다 보면 베트남에서 인기있는 품목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종과 지역을 정하고 나면 옮기고 싶은 회사를 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직장보다는 직원 수가 더 많은 회사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직원 수 30~40명인 회사가 좋다고 한다. 이보다 큰 기업으로 가는 게 더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 검색은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라고 권했다. 특히 무역 분야의 전문 구직·구인사이트를 추천했다. 박 부사장은 또 영어를 잘하고 베트남에서 활동할 사람을 모집하면서 ‘남성 구직자’로 제한하는 기업이 많은데 여기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남성을 찾는 이유는 이 지역이 험하고 출장이 잦기 때문이라며, 서 과장은 이미 현지 전문가이기 때문에 미리 단념하지 말라는 것이다.

타깃 기업을 찾으면 무조건 ‘들이대라’고 충고했다. 채용 공고를 내지 않은 기업이라고 해도 인재를 원하는 기업은 많다며 “공고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밝혔다. 또 지원서를 보낸 뒤 반드시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당부했다. 이때 입사시켜 달라고 사정하거나 구걸하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며, 가령 “난 베트남에 관심이 있지만 현재 속해 있는 직종이 사양산업이라 전직하려고 한다. 뽑을 생각이 있다면 이력서를 검토해 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가능하다면 인사 담당자와 만나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휴일이면 대부분 집에 있는다는 서 과장에게 박 부사장은 “베트남 관련 포럼은 반드시 가입해 활동하라”고 권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서 과장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가입하면 반드시 포럼 멤버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충고도 같은 이유에서다. 블로그 관리도 잘해야 한다. 와인 블로그를 만든 사람이 얼마 전 외국계 와인회사의 한국인 지사장으로 추천된 적도 있다는 경험담도 설명했다. 박 부사장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남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남들도 오래도록 기억한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커리어 성공 Tip

1. 에이지즘(Ageism)은 현실이다: 취업 시장의 나이 차별을 나타내는 에이지즘은 현실이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서미경씨에게 이번 전직은 중요하다. 지명도가 높지 않은 데다 시장성마저 불투명한 중소기업 출신의 30대 후반 여성에게 취업 시장은 매우 인색하다. 회사의 지명도를 높이거나 시장 전망이 밝은 아이템을 다루는 업종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다.

2. MBA 유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많은 구직자는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MBA 유학을 떠올린다. 업그레이드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취업 시장은 구직자의 MBA 졸업장보다 MBA 이전의 경력에 더 주목하고 있다. 소기업에서만 근무한 서씨에게 늦깎이 MBA 유학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차라리 현업에서 더 좋은 경력을 쌓고 돈을 버는 게 투자 대비 수익 면에서 낫다.

3. 바깥세상과 소통하라: 서씨는 일만 열심히 해왔다. 회사 사람들과 거래처 바이어만을 만나고 살았다. 본인은 회사 바깥 세계와 소통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지만 관심 자체가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종, 다른 직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과 만날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새로운 기회는 자신을 자꾸 노출시킴으로써 오게 돼 있다. 그늘 속에 숨어 지내면 태양빛을 받기 어려운 법이다.

4. 당신의 보물단지를 열어보라: 사람들은 자기 보물단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의 떡만 크게 본다. 서씨는 뛰어난 영어 실력에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시장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여자라는 점도 희소성이 있다. 그만큼 시장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자기가 직접 발굴한 바이어들도 귀중한 보물들이다. 이런 보물을 제쳐두고 서씨는 MBA 유학을 갈까, 여행사 직원으로 옮겨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5. 출사표를 들이대라: 채용 공고가 나기만 기다려 전직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를 찍어서 맞춤형으로 준비해야 한다. 왜 당신 회사에 관심이 생겼는지를 요약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이력서만으로는 부족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