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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성조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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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은 과거보다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는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조직되는 듯하고, 미국의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가 됐다.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와 캐나다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그런 미국을 비판한다. 그들이 보는 미국은 부끄러운 폭력과 비도덕적인 차별에 의해 지금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국가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

미국의 국내 뉴스가 곧바로 우리의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그만큼 세계에 대한 미국의 전 방위적 영향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되게 높아졌다. 세계화 이후, 특히 2001년 9·11테러 사건 이후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이러다간 전 세계인이 미국 대통령선거의 투표권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가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새로 조직되는 듯한 압박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미국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외국인 감독의 작품이 늘어났다.

미국에 대해 곧바로 언급해야 할 정도로 미국의 문제는 이제 ‘우리들’의 시급한 문제가 된 까닭이다. 7월 26일 개봉을 앞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2005), 라스 폰 트리에의 ‘만덜레이’(2005)도 외국인 감독이 관찰한 미국의 현재 모습이다.

노예 노동인 남아있는 나라
미국 비판이라는 주제에서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덴마크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다. 그는 2003년 야심 차게도 ‘미국 3부작’을 만든다고 밝힌 뒤 첫 작품으로 ‘도그빌’을 발표했다. 탄광을 배경으로 빈민의 문제와 그런 빈민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착취의 반휴머니즘을 공격했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 도그빌 같은 곳은 없어져야 한다며 지역 주민을 전부 총으로 쏴 죽이고 마을 전체를 불 지르는 장면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미국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영화는 과거에 보기 어려웠다. 관객은 도그빌(개의 마을이란 뜻)로 상징된 미국이 불타고, 미국인들이 사살되는 도발적인 화면을 보았던 것이다.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만덜레이’는 흑인차별을 문제 삼았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논쟁을 하려고 마음먹고 영화를 만든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미국의 추악한 면을 대놓고 비꼬는 식이다. 여기서는 노예해방이 선언된 지 7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흑인노예로 농장을 경영하는 만덜레이라는 곳이 무대다. 당황스럽게도 흑인들은 자유도, 민주주의도 모르는 채 노예처럼 일하며 매를 맞고 산다.

흑인들을 자유시민으로 바꾸어보려는 게 이곳에 우연히 들어오게 된 그레이스의 꿈이다.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노예제 농장을 협동조합으로 바꾸려는 등 그녀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도 과거 노예농장을 장악했던 백인 여주인과 점점 닮아가고 만다. 노예들을 착취함으로써 설립된 미국의 상징, 만덜레이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고 2부에서도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의 부귀영화가 노예와 같은 저임금 유색인의 착취에 기반을 둔 경제제도 덕분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미국은 흑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나라라고 꼬집는 것으로 영화는 종결된다. 브레히트 스타일의 낯선 무대장치, 데이비드 보위의 비판적인 노래 ‘영 아메리칸스(Young Americans)’도 1부에 이어 계속 이용되고 있다. 감독의 미국 비판은 지금 제작 중인 세 번째 작품 ‘워싱턴’에서 종결될 예정이다.

폭력을 숭배하는 사회
사실 차별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가장 극적으로 그 문제를 드러내는 게 두드러질 뿐이다. 그러나 폭력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연, 미국의 폭력은 압도적이다. 제도적인 공간에서건, 비제도적인 공간에서건 말이다. 미국은 지금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최대의 군사국가이며, 길거리는 물론이고 학교에서조차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라다.

캐나다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가 문제 삼는 것은 미국인들 사이에 내재된 폭력의 성질에 관련된 것이다. 겉으로는 폭력을 야만적인 행동으로 비판하지만, 사실 몸속 깊숙이 내면화된 폭력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극화했다.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이 무대다. 스낵 바를 운영하는 톰은 소도시의 전형적인 가장이다. 사랑하는 아내, 영리한 아들, 그리고 귀여운 딸이 있다. 이웃들은 “교회에서 봐요”라며 그에게 인사할 정도다. 이곳에 어느 날 무장강도 두 명이 나타난다. 직원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이자,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던 톰은 몸을 날려 두 강도를 순식간에 해치운다.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다. 아무리 강도들이지만 순식간에 총질을 하여 죽이는 톰의 지나친 폭력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폭력의 기술로 톰은 소도시의 영웅이 된다.

그런 ‘특수한’ 폭력의 성격을 알아차리는 쪽은 갱스터들이다. 그런 솜씨는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게 아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톰은 과거에 갱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던 킬러였다. 영웅의 과거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고, 과거를 숨기는 데 성공함으로써 소도시의 선한 시민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남다른 폭력을 휘두를 줄 아는 그를 동네 사람들은 부러운 듯 바라본다. 알고 보니 그의 모범생 아들마저 폭력에 남다른 솜씨가 있음이 드러난다. 폭력은 어느덧 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는 중이고, 또 은근히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 폭력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정의의 수단으로 찬양 받는 것이다.

운명처럼 맞닥뜨린 폭력의 사슬에서 고통 받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을 둘러싼 미국과 세계의 질서까지 고민하도록 영화는 강력한 알레고리를 깔아놓았다. 아마 앞으로도 폭력은 대를 이어 역사성을 확보할 것이고, 불행하게도 위기의 순간이라고 판단되면 어김없이 동원될 것처럼 보인다.
폭력과 인종차별, 이웃들의 부러움을 받는 톰과 같은 미국이 사실은 부끄러운 폭력과 비도덕적인 차별에 의해 지금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영화들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만덜레이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주연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이삭 드 번콜
러닝타임 139분

폭력의 역사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주연 비고 모텐슨·마리아 벨로
러닝타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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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바깥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영화 ‘만덜레이’ ‘폭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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