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문 뒤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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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25면

한 번이라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그 수상스러운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저 관광객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라 람블라스 거리’부터 시작해보자. 거리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라면 영국 런던이나 에든버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흔해빠진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여기 사람들은 좀 더 유별나다. 어떤 이는 고철 더미 위에 거꾸로 매달렸다 떨어지는 반복적인 퍼포먼스를 통해서 시시포스의 신화를 보여주는 듯하고, 또 어떤 이는 페트병으로 만든 옷을 입고 영화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정크 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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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그저 대단찮은 서두에 불과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진짜 매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관광객이 넘쳐나는 ‘라 람블라스 거리’를 탈출하여 그 양편에 방사선으로 펼쳐져 있는 조금 어둡고 비좁은 골목 안, 그 골목 안에 닫힌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라 람블라스’가 남부럽지 않게 잘 닦아놓은 트랙이라면 ‘라발(Raval) 지역’은 그들의 잘못된 옆구리 같은 곳이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어두침침하고 길을 잃기 십상인 곳. 예컨대 뱃사람들이 싸구려 매춘부나 독주를 찾으러 가는 곳이 바로 ‘라발’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크고 활기찬 두 개의 대형 뮤지엄이 바로 그 ‘라발’ 지역 안에 있었다. 특히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했다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줄여서 ‘MACBA, 막바’라고 부른다)은 낮부터 부랑자들이 술에 취해 누워 있는 좁은 골목길 안에 숨어 있었는데,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이 모던한 백색의 미술관 건물과 단정치 못한 이웃의 낡은 건물들이 보여주는 그 극단적인 명암이 인상적이었다(사진). 오랜 시간에 걸쳐 주의 깊게 진행되어온 도시 갱생 프로젝트에 의해서 ‘라발’ 지역은 이제 문화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되었다. 미술관과 대학교를 중심으로 새롭게 추가된 트렌디한 클럽이나 개성적인 상점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제3세계 이민자들(파키스탄이나 에콰도르)의 초라한 식당이나 정육점과 어우러지면서 1960년대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술가·지식인·복장 도착자 및 매춘부들을 위한 오래된 미로 같은 속에서 길을 잃는다고 생각해 봐라.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롤러코스터보다 100배는 더 재미있었다.

바르셀로나는 도시의 모든 지붕 아래, 그 어둡고 좁은 골목 안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 닫힌 문 뒤에 보다 비밀스럽고 수상스러운 뭔가를 감추고 있다. 닫힌 문의 벨을 누르고 그 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에게 어떻게 잘 말하느냐에 따라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들…. 들어가기만 하면 내 생애의 가장 멋진 밤(누군가에게는 악몽일 수도 있겠지만)을 보낼 수도 있는 그런 장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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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허니’ 김경씨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로 개성 넘치는 책『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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