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헌재 결정을 뒤집자고 나선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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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까지 ‘그놈의 헌법’과 싸울 것인가. 노 대통령은 어제 행정중심복합도시 기공식에서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국회가 왜 서울에 남게 됐는지 대통령은 모르는가?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도 뻔히 알고 있다. 노 대통령의 주장은 헌재의 이런 결정을 뒤집자는 정치적 선동일 뿐이다.

 헌재는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 특별조치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행정수도’를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복잡한 이름으로 바꾸고, 정부기관도 일부만 옮기겠다고 해서 겨우 위헌을 면했다. 2005년 헌재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합헌으로 결정한 이유를 여전히 청와대와 국회, 금융정책 결정기관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헌법을 우롱한 게 처음은 아니다.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경고한 중앙선관위를 비난하고, 이미 대통령의 선거 개입 금지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선거운동을 못하게 막는다고 ‘그놈의 헌법’이라고 비난해 놓고, ‘헌법에 내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지 않느냐’고 심판을 청구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취임 선서에서 수호를 약속한 헌법은 다른 나라 헌법이었는가.

 노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 정부 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 문제야말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밀어붙인 노 대통령의 책임이다. 정부 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성이 수없이 지적됐지만 문제가 없다고 추진하더니 이제 와서 그것을 빌미로 헌재 결정까지 뒤집자고 하는가.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들이 일치하여 행복도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선거를 의식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대선 후보들을 조롱한 말이다. 노 대통령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런 거대 국가사업에 대해 대선 후보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집권 후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