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온 가족 한방 생활,부엌 침실 하나로 트여|보통 백50년 넘어 ∴새 건물은 콘크리트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유난히도 춥고 무더운 시베리아의 야쿠티아. 이곳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그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을 견뎌낼까.
이 나라 수도인 야쿠츠크에는 두 가지 형태의 집이 있다. 하나는 중세 러시아 시골풍의 통나무집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식 콘크리트 아파트이다.
러시아풍의 통나무집은 통나무를 가로 걸쳐서 벽을 쌓아올리고 물매를 잡아 지붕을 양쪽에서 경사지게 올린 삼각지붕형태를 취하고 있다.
통나무집들은 단층집과 2층 연립식으로 지은집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2층 연립식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지난날의 아파트이다.
이런 러시아풍의 통나무집들은 보통 1백50년에서 2백년전에 지은 집들로 대개 한쪽으로 비스듬히 쏠려있다. 특히 2층 연립통나무 주택들은 지붕의 한 허리가 약간 내려앉아 휜 것이 보통이다.
통나무집들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허리가 내려앉는 것은 겨울에 얼었던 땅 표면이 여름에녹아 기초가 흔들리면서 집이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대식의 콘크리트 아파트는 대체로 5∼6층 정도의 높이인데 어느 것이나 1층을 지상에서 2m 가량 띄어서 짖는다. 땅이 얼고 녹아도 기초가 흔들리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언땅녹아 집기울어>
아파트뿐만 아니라 정부청사나 극장·회관등 콘크리트구조의 대형 건물들은 모두 땅 표면에 기둥을 박고 약 2m가량 띄어서 짓는다.
시가지 도로변의 상하수도 파이프도 모두 길 위 1∼2m가량의 높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마치 정유공장의 파이프라인 같았다.
이 상하수도 역시 땅이 얼어있기 때문에 땅 속에 묻지 못하고 지상으로 노출시켜 얼지 않는 단열재로 싸맸다.
언 땅이 녹는 7∼8월에도 2m만 파 내려가면 땅 속은 여전히 얼음덩어리기 때문이다.
야쿠츠크의 시가지를 거닐어보면 러시아 중세 시골풍의 통나무집들과 현대식 콘크리트아파트들이 한데 섞여 있어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기 전의 시가지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필자가 야쿠티아 원주민의 가옥을 조사한 것은 작년 8월과 금년1월 두 차례다.
작년8월 야쿠츠크 공항청사를 나서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늪지대의 통나무집들을 야쿠티아 원주민들의 전통가옥으로 착각, 망원렌즈를 장착하여 사진을 찍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양쪽에서 지붕 물매를 잡은 이런 통나무집들은 중세 러시아풍의 집이고, 야쿠티아 원주민들이 사는 집은 형태가 전혀 달랐다.
야쿠츠크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가량 달려「두라기모」마을에 도착한 것은 작년 8월2O일이었다. 내 친 걸음에 서너 시간쯤 더 달려 시골 깊숙이 자리 잡은 마을에 가보고 싶었지만 운전기사는 지프가 아니면 갈 수 없다고 했다. 친절하게도 자기 승용차를 내준 문화부장관의 호의가 도리어 발을 묶는 결과가 되었다.
이 마을의 원주민 니키포라바씨가 사는 집을 찾아갔다.
그 집은 밖에서 보기에는 벽이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고 지붕은 물매가 없이 평평해 꼭 사다리꼴처럼 생겼다. 외벽과 지붕은 흙으로 발랐는데 비가 오면 흙벽과 물매가 없는 평평한 흙 지붕은 그대로 빗물이 줄줄 샐 것만 같았다.

<사다리꼴로 벽올려>
출입문은 나무 널조각으로 만든 판자문 하나뿐인데, 여름철에도 두꺼운 전으로 문 전체를 싸맸다. 안으로 들어서니 출입문 양옆 벽과 정면 벽에 사방 50cm가량의 창문이 하나씩설치 돼 있었으나 실내는 밝지 않았다.
그 집은 실내가 방 하나로 된 통집이었다. 방이나 부엌을 구획 짓는 벽이 없어 출입문을들어서면 그대로 부엌이자 방이 되는 셈이다.
창문도 붙박이로 고정되어 바깥바람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널빤지로 된 출입문 하나뿐이었다. 출입문은 벽이 사다리꼴처럼 안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밖에서 열때는 힘이 들지만 안에서 닫을 때는 제 무게에 의해 저절로 닫힌다.
실내에서 보면 벽은 통나무를 잇대어 세워놓았고, 그 위를 가로질러 통나무를 촘촘히 평면으로 깔아 지붕을 만들었다. 그리고 통나무를 잇대어 만든 벽과 지붕 밖에다 각기 흙을 물에 버무려 비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두껍게 발라놓았다.
실내는 가로가 5백70cm, 세로가 7백10cm, 높이가 2백40cm여서 널찍했다.
출입문 건너편 안쪽에 「게뮈료크흐」라는 벽난로가 설치돼있고 출입문과 게뮈료크흐 사이에 식탁과 조리기구들이, 그리고 그 안쪽 벽을 따라 통나무로 깐 침대가 잇따라 놓여있다.
통집이어서 침실· 부엌· 식당이 하나로 트인 이 집에서 니키포라바씨 부부와 딸 넷, 아들 하나 등 일곱 가족이 산다.
실내를 둘러본 순간 다섯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벽도 없이 트인 통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년전 외몽고를 조사할때「겔」이라 부르는 원형의 이동식 텐트 안에서 10명의 자녀와 함께 사는 부부를 보고 조사단원들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궁금증이었다.
필자는 주인 부부와 통성명을 하고 조사목적을 밝힌 다음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물매도 잡치지 않은 평평한 지붕은 통나무를 걸쳐놓고 흙으로 발랐는데 비가 오면 물이 샐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야쿠티아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고 비가 온다고 해도 이슬비가 조금씩 내려 옷도 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방수보다 보온주력>
이 말을 듣는 순간 야쿠티아 원주민의 가옥은 비와는 관계없이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차단시켜 보온에 특히 주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바깥 날씨는 더운데도 집안은 선선했다.
야쿠티아 원주민의 집은 우리나라처럼 전문적인 기능을 가진 목수가 짓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짓는다. 여름에 소나무를 베어 겨울 내내 말렸다가 그 이듬해 날씨가 풀리면 집짓기를 시작해 여름철 두 달 동안에 끝낸다.
니키포라바씨는 이 집을 조상에게 물려받아 살고 있기 때문에 새로 집을 지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요즘은 세월이 좋아서 창에 유리를 붙이지만 그가 어렸을 때는 겨울에 창에다 얇은 얼음판을 붙였다. 채광용으로 창에 붙인 얼음판이 녹지 않고 견딜 정도라면 실내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했다.
벽도 없이 하나로 트인 통 집에서 다섯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어떻게 불편을 해소하며 살아가는지 매우 궁금했으나 부인이 40세, 남편 니키포라바씨가 39세인 이 젊은 부부에게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일 것 같아 그대로 넘어갔다,
집 밖에 나와 보니 좀 떨어진 곳에 역시 사다리꼴로 지은 축사 하나가 있었다. 말을 키우는 마구간인데, 안은 역시 통나무를 세워 벽을 만들고 지붕은 통나무를 가로 걸쳐 놓았다.
외벽과 지붕엔 말똥을 약30cm 두께로 발라 바깥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정자형 통나무집도>
이것을 보고 통나무집의 벽과 지붕에 바르는 차진 흙이 얼마나 귀한가 알 수 있었다. 야쿠티아의 흙은 밟으면 먼지가 풀썩풀썩 나는 모래 섞인 먼지 흙 이어서 차진 흙은 아주 먼 곳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말이 사는 축사에까지 차례가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야쿠츠크에서 북쪽으로 4백km 떨어진 타친스키 지역에 사는 원주민의 가옥은 형태가 좀 달랐다.
필자가 타친스키구(도)의 으이테겐 마을에 간 것은 지난 1월2일, 수은주가 영하 51도까지 내려가던 때였다.
집주인인 73세 된 마리아, 가바르비나 미라노바 할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 안으로 안내했다. 집안은 훈훈했다. 이 집은 통나무를 가로 뉘어서 정자로 쌓아 올리고 그 위를 역시 통나무로 덮어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안으로 드나드는 문은 나무판자로 되어있고, 실내는 역시 하나로 트인 통 집이었다. 출입문 안쪽 옆에 게뮈료크흐가 하나있고 그 옆쪽에 식탁과 취사도구들이 놓여있으며, 통나무침대가 벽 밑에 연이어 있는 내부구조는 니키포라바씨집과 비슷했다.
이런 통나무집을 야쿠티아사람들은 「문무크흐」라 부른다. 이런 집은 외벽과 지붕을 흙으로 바르는 대신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의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솜 같은 「모허크흐」를 실내에서 끼웠다. 모허크흐는 숲의 습지대에 자생하는 솜털 같은 것이다.
실내는 정사각형으로 한쪽벽의 길이가 12m, 높이가 3·5m되는 시원하게 트인 공간이었다.
야쿠티아 원주민의 집은 흙벽을 친 사다리꼴 통나무집과 흙을 사용하지 않은 정자형의 통 나무집 등 두 가지 형태가 있고, 박물관에도 이 두 가지 형태의 모형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