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이명박 조회 1건이냐 106건이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검찰의 국정원 수사가 2005년 불법 도청사건 때처럼 국정원의 수뇌부로 향할지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이 18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승규 전 국정원장, 이상업 전 국내담당 2차장을 포함한 전.현직 직원 6명을 국정원법 위반(정치 관여.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국정원의 이명박 후보 관련 정보 수집이 1건뿐인지 ▶이상업 전 차장을 포함한 상부 보고와 외부 유출은 없었는지 ▶'이명박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했는지 등 '국정원의 3대 의혹'을 겨냥하고 있다.

국정원은 "부패척결 TF팀 소속 5급 직원 고모씨가 2006년 8월 행정자치부 지적전산망을 통해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자료를 한 차례 열람했다"는 사실은 시인했다. 하지만 나머지 의혹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상업 전 차장 감찰 자료 요청=이번 수사의 관건은 5급 직원이 2006년 4~10월 6개월여 동안 대선 주자인 이명박 후보를 조사하는 과정에 과연 수뇌부 보고나 지시가 없었느냐를 밝히는 데 있다.

한나라당은 "이상업 당시 2차장이 '이명박 TF팀' 운영을 직접 지시하고, 청와대와 여권 중진 의원들에게 이른바 '이명박 X파일'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고씨가 2005년부터 "17개 정부전산망에서 106차례나 이 후보의 친인척 개인 정보를 조회했다"는 주장도 했다.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정원이 수뇌부의 지휘 아래 특정 대선 주자를 겨냥해 대대적인 정치사찰 활동을 벌였다는 게 된다.

수뇌부 개입 여부를 밝히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미 국정원 측에 이상업 당시 2차장에 대한 국정원 감찰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요구 자료 목록에는 고씨의 직속 상관이던 L과장(현재 2급), P부단장(2급), K단장(1급)을 포함해 지휘라인 간부들의 진술서와 고씨의 컴퓨터 사용기록, e-메일 송.수신 내역, 통화조회 내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이 비리조사 차원의 '부패척결 TF팀'을 두고, 정치인의 뒷조사를 하는 게 국정원법에 근거한 적법한 행위인지에 대해 법률 검토도 하고 있다. 설사 수뇌부의 개입 여부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검찰의 이번 수사로 인해 국정원의 2차장 산하 국내 정보 활동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달 7일부터 이상업 전 차장을 포함해 거명된 직원들을 감찰 조사한 결과 '이명박 TF팀은 존재하지 않았고, 외부 유출도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내부 제보자에 대한 조사를 포함해 감찰이 덜 끝났다"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과 국정원의 악연=국정원은 2005년 8월 불법 도청사건에 이어 2년 만에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됐다. 국정원은 2년 전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 각각 미림팀과 휴대전화 도청팀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 서울 내곡동 청사를 사상 처음 압수수색당한 적이 있다. 2001년 1월 안기부 자금 총선 유용(안풍) 사건의 경우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지던 안기부 비밀계좌가 검찰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1987년 옛 안기부가 대선 직전 여간첩 사건으로 조작했던 수지 김 살해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정효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