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민주화」 미 개입에 위기감/중국,왜 “독자정부수립” 강수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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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패튼총독안 수용되면 북경측 설땅 막막”/영도 초강경… 미 지원업고 기존입장 고수
홍콩의 민주화개혁을 둘러싼 중국­영국간 외교분쟁이 막다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17일 루핑(노평) 홍콩·마카오판공실주임을 통해 크리스 패튼 홍콩총독의 민주화개혁안에 맞서 독자적인 홍콩예비정부 구성작업에 즉각 착수할 것이라고 폭탄선언,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모색하던 영국에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정부가 97년 홍콩반환이후 홍콩에 독자정권을 수립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영국과 밀고당기는 협상과정에서 한 경고성 위협사격과 이번 노 주임의 발언은 강도나 실천의 지면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중국은 협상을 통한 홍콩문제 해결이 사실상 물건너갔음을 공개리에 천명하면서 홍콩문제를 실력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홍콩문제에 있어 초강경자세로 급선회한 것은 패튼총독이 홍콩정청 관보를 통해 자신의 개혁안을 공시한데 이어 미국이 홍콩문제에 개입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북경당국은 패튼총독이 민주화개혁안을 입법국(의회)심의에 앞서 최근 관보에 게재한 것은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콩민주화 개혁안을 강행할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홍콩문제에 관한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던 미국이 16일 홍콩개혁안을 중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 무역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개입의사를 밝히고 나섬으로써 사태가 중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중국지도부를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인권문제와 무기확산,죄수 노동력이용금지,시장개방 등을 둘러싸고 미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처지다.
특히 오는 6월 미국 의회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MFN)대우 지위연장에 인권문제 등 중국 당국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달 경우 중국은 미국시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입장에 처해 있다. 따라서 중국은 영국이 자신들의 이같은 화급한 입장을 이용,미국을 업고 홍콩문제를 풀어보려는 의도로 파악,중국을 압박하는 영국과 패튼총독에 쐐기를 박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영국과 패튼총독의 태도도 만만치 않다.
패튼총독은 오는 5월 미국을 방문,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홍콩민주화개혁에 대한 지지와 함께 영국과 미국이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영국정부도 중국측의 독자정권 수립 위협을 일축하면서 『홍콩총독의 정치개혁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기존입장을 거듭 확인,중국측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패튼총독이 지난해 7월 제시한 정치개혁안은 ▲입법국의원 60명중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의원을 현재 18명에서 20명으로 늘리고 ▲10명은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위원회에서 선출하며 ▲교사·기업가 등 직능대표로 구성되는 나머지 30명도 직능대표선거에 참가하는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중국은 패튼의 개혁안을 수용할 경우 2백70만 홍콩근로자 전원이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하는 결과를 초래,중국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어질뿐 아니라 홍콩이 민주화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결국 공산당 일당독재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패튼총독이 뿌려놓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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