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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72. 골프인생 18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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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필자(中)가 김덕주 프로(左), 전우선 장현 그린골프연습장 회장과 얘기하고 있다.성백유 기자

 4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 글이 어느새 마지막 회를 맞았다. 평생 파72의 벽을 넘기 위해 살아온 과거를 생각, 이 글의 마지막 회도 72회를 고집했다.

 나는 지금 경기도 장현 그린골프연습장에서 골프인생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 요즘 내 곁에는 50년 골프인생 동반자인 후배 김덕주 프로와 전우선 전 골프연습장협회 부회장이 있다.

 내가 김 프로를 만난 것은 꼭 50년 전 서울컨트리클럽에서였다. 나는 그때 프로였고, 그는 내 뒤를 이은 ‘(골프프로)양성자’ 신분이었다. 김 프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의 장타자였다. 감나무 클럽으로도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괴력을 가졌었다.

 그러나 골프의 신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쇼트게임과 퍼팅이 약해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의 준우승 기록은 다섯 번이 넘는다.

 나는 이따금 “바보처럼 그렇게 좋은 샷을 갖고도 우승을 못하느냐”며 그를 나무랐다. 73년께 일본투어에도 데리고 가 쇼트게임을 연마하도록 이끌었지만 끝내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했다. ‘골프 우승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어쩌면 그를 두고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싶었다. 김 프로는 시니어 투어에서 2승을 올려 한을 풀었다.

 그에겐 또 다른 재주가 있다. 워낙 사람이 성실하고 원만한 성격이라 대인관계가 좋았다. 그는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과 오랜 친분을 쌓았고, 광릉컨트리클럽 상무·전무를 거쳐 2003년에는 뉴스프링빌골프장(옛 동진) 대표를 맡아 골프장 경영자로 변신했다.

 프로골퍼가 골프장 사장이 된 것은 아마 그가 1호일 것이다.

 김 프로는 2년 전부터 나와 함께 장현으로 옮겨와 골프인생의 마지막을 지도자로서 보내고 있다. 그는 동생이나 친구처럼 언제나 나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장현 그린골프연습장 회장인 전우선씨도 나의 오랜 골프 벗이다. 내가 레슨을 그만두려고 할 때 그는 늘 “골프연습장에서는 KPGA 프로가 레슨을 해야 한다”며 나의 ‘골프 수명’을 늘려줬다. 핸디캡 3인 그는 6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장타를 날려 나와 김 프로를 곤혹스럽게 한다. 나와 김 프로, 전 회장은 틈만 나면 필드에서 맞붙는다.

 내게는 아직 못다 이룬 꿈이 하나 있다.

 꿈의 무대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열리는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한국인 골퍼를 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최경주 프로가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세계 정상을 향해 뛰고 있으니, 내 꿈이 곧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의 골프인생은 군자리에서 시작해 오거스타를 거쳐 이제 장현에 와 있다. 이곳에서 마지막 골프인생을 정리하며 힘닿는 날까지 후진 양성에 헌신하려고 한다. 보잘것 없는 노(老) 골퍼의 글을 읽어준 중앙일보 독자와 골프 팬들에게 감사한다.

<끝>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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