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들 임기무시 인사에 항의집회/한은 총재경질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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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선후 정주영씨 소취하 앙금시각도
○…조순한은총재의 경질은 그 비중으로 따지자면 얼마전 육참총장의 경질과 비결될만한 것이나 그 과정을 보면 「전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사문제라지면 역시 경제현상은 다른 분야에 비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일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인데,그만큼 이번 조 총재의 경질은 사연이 많았던 「긴 이야기」였다.
이번 한은총재의 경질은 일단 조 총재가 현 정부로서는 지나치게 「버거운」 인물이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사전에 어느정도 준비되어 있었든간에 경기부양을 단기 목표로 내걸고 몸을 가볍게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현 정부로서는 「정치 감각을 외면하는」 조 총재가 여간 버거운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조 총재가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중 김영삼후보의 정적이었던 정주영국민당후보에 대한 고소를 쉽게 취하해버렸던 것이 실제로 굳은 「앙금」을 남겼고,이에 따라 조 총재도 평소의 그답지 않게 대통령의 「측근」을 긴히 만나 적극적인 「해명」을 하는 세속적인 자리를 갖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간 대통령 주변에서는 한은총재의 경질론과 경질불가론이 평팽히 맞서며 오락가락하는 소문과 관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지난 2·26개각 이후 한은을 비롯한 금융계의 최대 관심은 총재의 거취에 쏠려 있었다. 바로 이 「매듭」이 풀리지 않았던 관계로 재무부의 1급 인사를 비롯,국책은행장 등의 재무부 산하기관 인사 모두가 「정체」되어 왔었다.
이같은 배경속에서 결국 한은 총재의 경질쪽으로 방침이 굳어진 것은 박재윤수석이 이끄는 청와대 경제팀이 더 넓은 「운신의 폭」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데다 김명호신임총재가 그간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집안 측근과 이런 저런 상의를 해온 결과라는 것이 그간의 사연을 잘 아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조 총재는 자신의 경질 방침이 알려진 후인 12일 오후 6시30분에야 재무부로부터 사표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으며 곧바로 비서진을 통해 재무부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조 총재는 경질이 공식발표된 13일에는 출근하지 않고 이취임식 일정이 잡히기를 기다렸으며 한은노조는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가 개혁인가』라는 성명을 내고 로비에서 항의집회까지 가졌다.
한편 신임 김명호총재는 13일 아침까지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만일 사실이라면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재무부와 한은은 김 총재가 지난 70년 5월2일 김성환총재가 은행감독원장에서 바로 총재로 임명된 이후 23년만의 한은총재 내부승진이라는 기록을 강조했다.<김수길·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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