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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大選 검찰수사 17건 집중 분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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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03면

검찰이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의 처남 부동산을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국가정보원이 이 후보 뒷조사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파문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바람직한 수사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1992년, 97년, 2002년 등 역대 대선 때 각 후보 진영이나 언론의 폭로로 시작된 주요 검찰수사 17건을 집중 분석해 조사기간과 처리 결과, 검찰의 태도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2002년은 ‘폭로’로 점철된 해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당마다 특별 조직을 구성해 폭로전에 나서는 ‘네거티브(negative) 전략’에 매달렸다. 각 선거 진영은 폭발력 있는 의혹들을 골라 검찰에 고소 고발했다.

'느림보 수사'로 의혹만 부풀려 #2002년엔 발표까지 평균 11.5개월 … 통상 사건 처리보다 4배 길어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사건만 8건에 이른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빌라 게이트’ ▶이 후보 측의 최규선 20만 달러 수수설 ▶이 후보 측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 ▶정몽준 의원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연루 의혹 ▶국정원 도청의혹 등이 그것이다.

취재팀의 분석 결과 이들 사건이 고소고발부터 수사결과 발표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1.5개월이었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검찰 고소고발 처리 기간(3개월)의 4배에 달한 것이다. 한결같이 대선 이후에 최종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도 ‘의혹은 사실 무근’이었다. 물론 상당수 사건은 대선 직전에 고소고발이 접수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선거 뒤에도 처리를 질질 끄는 경우가 많았다. 시종 소극적인 자세였다. 결과적으로 의혹이 계속 부풀려짐으로써 ‘표적’이 된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회창 후보의 경우 2002년 초 50%를 넘던 지지도가 3월 들어 민주당 설훈 의원이 “서울 가회동 호화빌라 두 채를 얻어 장남 가족과 살고 있다”며 비자금 유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곤두박질쳤다. 5, 6월 상승세를 탔던 이 후보 지지도는 7월 말 김대업씨가 ‘병역비리 은폐’ 의혹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서자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어 10월 민주당이 이 후보 부인의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 의혹을 제기해 쐐기를 박았다.

이들 사건이 여야 대치 속에 눈덩이처럼 커져갔지만 검찰은 고소고발이 이뤄진 후에야 수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진상조사특위는 가회동 빌라 의혹과 기양건설 비자금 수수 의혹을 묶어 11월 15일 한인옥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폭로와 고소고발에 최대 8개월의 간격을 둠으로써 재탕, 삼탕 우려먹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다음해 4월에 “근거 없는 조작극”이라고 발표했다.

병역비리 은폐 의혹의 경우 김대업씨의 폭로 직후인 8월 1일 한나라당 측과 김씨가 서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전을 벌이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0월 25일 “병적기록표가 위·변조되는 등 김씨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사건 수사를 완전히 마무리한 것은 대선 이후인 다음해 2월 5일이었다.

분석 대상인 8건 중에서 수사 기간이 가장 긴 사건은 국정원 도청 의혹이었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2002년 11월 28일 “국정원에서 국회의원, 언론사 사장, 기자 등의 전화통화 내용을 불법 도청했다”고 발표하고 여야 간 고소고발 공방이 오갔다. 수사결과가 나온 것은 2년4개월이 지난 2005년 4월 1일. 검찰은 “당시 문건 형식이 국정원 내부 자료와 다르며 현대기술로는 휴대전화 도청이 불가능하다”며 무혐의로 종결했다.

‘국민통합 21’ 후보였던 정몽준 의원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의혹 역시 고발 후 2년2개월이 지난 2005년 1월에야 무혐의 처리됐다. 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둘러싼 ▶30억원대 부동산 신고 누락 ▶주가조작 연루의혹 관련 고발은 6개월 만에 ‘근거 없음’으로 종결해 대조를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2002년 대선에선 검찰이 선거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며 “수사 기간이 길었던 것은 관련자 소환이 어려운 데다 종적을 감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혹 규명이 늦어져 ‘네거티브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게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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