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 밀리고 제자에 시달려 줄곧 패색 | 빈 삼각 넘어 "지옥탈출"...역시「큰승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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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줄씨름 방식의 연승전으로 치러지는 「진로배 SBS세계바둑최강전」 에서 한국팀이 또 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작년에는 한국팀 선봉장 유창혁5단의 맹활약으로 일본팀이 지리멸렬함으로써 한국팀과 중국팀이 우승을 다퉜으나 이번에는 녜웨이핑(정위평) 9단이 빠진 중국팀의 전력약화로 한국과 일본이 우승을 다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봉수9단과 조훈현9단이 남아있는 한국팀에 일본팀의 마지막 정자 다케미야마사키 ( 무궁정수)9단이 도전하게 되어 흥미만점의 절정을 장식했다.. 우주류 기풍으로 유명한 다케미야는 제1,2기 후지쓰배를 차지했던 「세계적 큰 바둑」 이어서 결코 얕볼 수 없는 상대였다..
지난해 서9단은 일본팀 주장 린하이평(임해봉)9단과 중국팀 주장 녜웨이핑9단을 잇따라 잠재우는 멋들어진 끝내기 안타로 조9단으로 하여금 대국하지 않고도 상금을 분배받는 불로소득을 챙기게 했었는데 과연 이번에도 지난 기의 재판이 될는 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서9단은 일본팀의 린9단과 중국팀의 마샤오춘 (마효춘) 9단을 연파해 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으나 다케미야와의 대국에서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다소 서두르는 인상의 포석을 펼치는 등 페이스를 잃고 난조를 보인 끝에 고배를 마심으로써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했다.
「화살 두개 가진 자가 한 개 가진 자에게 지기 쉽다」는 우리 고유의 속담도 있거니와 서9단이 과거 다케미야에게 1승4패로 전적면에서 밀리는 등 이른바 「거북한 상대」를 맞은 데다 최근 제자 이창호6단에게 너무 시달린 탓으로 슬럼프 징후까지 있어 더욱 그랬다.
돌을 가려 백을 쥔 조9단은 포석에서 실패해 줄곧 밀리는 상황이었는데 중반의 고비에서 다케미야가 그냥 밑으로 젖힐 장면에서 과격하게 빈 삼각으로 치받아 끊더니 어복을 막아 충분한 상황임에도 엉End한 곳을 들여다보다가 역습을 허용했으며, 결국 앞의 빈삼각이 화근이 되어 결정타까지 얻어맞고 말았다.
『바둑은 모양이 좋아야 합니다』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선생의 명언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다케미야의 빈 삼각이었다.
조9단은 역시 큰 승부에 강했다. 「1억원 짜리 단판승부」를 건져 올린 것이다. 그 바늘구멍 만한 틈을 놓치지 않고 지옥을 탈출한 예리함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게 바로 실력입니다. 조9단 아니면 그 바둑을 뒤집기 어려워요』
우쑹성 ( 오송생)9단의 코멘트가 그럴듯하다.
『이제 다케미야에게 진 빚을 조금 갚은 기분입니다』 서9단의 국 후 소감이 재미있다. 조9단의 이번 승리가 옛 영광을 되찾는 심기일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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