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의 개혁/여론에 바탕둔 부패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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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6공과 단절 「새 세상」만들기/기득권층·관료사회 반발이 걸림돌
2일 청와대에서는 새정부의 성격과 관련,매우 의미심장한 발표가 있었다. 이날 김영삼대통령은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과 조찬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새정부가 「6공2기」로 불리는 것이 싫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이경재대변인이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정부를 대통령 이름을 따서 부르는 미국처럼 「김영삼정부」로 불리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아울러 밝혔다.
대통령 당선직후 자신의 정권은 2공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김 대통령이 이처럼 새정부 명칭부터 신경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 대통령이 이날 밝힌 언사속에 잘 응축돼 있다.
『5,6공 일부에서 소위 개혁을 추진했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추진하는 개혁과 용어는 같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또 내용과 방향도 그렇지만 개혁추진세력에 대한 국민의 동의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5공은 총칼에 의한 힘으로 일을 추진했고 국민의 진정한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정통성있는 문민정부의 개혁추진에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새정부의 개혁은 과거 정권과는 차원이 다른만큼 새정부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다. 또 5,6공과 새정부의 개혁이 똑같이 「위로부터의 개혁」이지만 실패와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줄 것이라고 예단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새정부가 출범하면 으레 개혁을 외치게 마련이고 시간이 흐르면 「고려공사 3일」처럼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항간의 우려를 의식,「옛날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김 대통령은 개혁의 성격으로 보나,성공여부로 보나 과거정권과는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김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렇게 설명한다.
『신한국창조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다. 경제난의 주범인 부정부패는 왜 생겼는가. 바로 정통성이 결여된 역대 정권이 체제유지비용을 조달하려다보니 정경유착으로 검은 돈이 오갔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지 않았던가. 군사정권인 5,6공때는 이런 한국병이 더더욱 악화돼 이제 대증요법이 아닌 일대 수술이 불가피하게 됐다. 따라서 김영삼정부가 추진할 개혁강도는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 대통령이 5공을 「총칼정권」이라고 단죄한 것도 이젠 정말 새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에서다.』
문민정권을 강조하는 김 대통령이 「6공2기 정부」를 거부한 것은 이 측근이 설명한대로 일정한 한계내에서 5,6공과의 단절을 도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직접 5,6공을 비판한 것은 개혁의 대상은 바로 「5,6공적인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가 『개혁하는데 5,6공과는 달리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은 총칼에 의한 위협에서가 아니라 민의에 바탕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여론을 등에 업고 몰아치는 김 대통령 특유의 기질이 금명간 본격 발휘될 것이라는 예고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조각·당직개편에서 보듯 개혁풍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중요자리에 모두 자신의 측근이나 개혁적인 인물을 박아놓은 것은 기득권층을 하나하나 무장해제시켜 무력하게 만든 다음 개혁으로 이들을 세탁하겠다는 심산으로 관측된다.
민자당의 다수인 민정계가 불만을 가득 품고 있음에도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은 이처럼 개혁바람의 풍속이 보통이 아님을 눈치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구시대를 상징하는 김종필대표가 『백리길을 가는데 처음부터 뛰면 뒤로 자빠진다』며 슬쩍 맞바람을 불어넣는 등 반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대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기득권층은 아직 없다. 기득권층은 각 개인별로 권력앞에 약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개혁이 장담한대로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지금은 국민 대다수가 개혁추진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가 중요하다. 김 대통령의 인사가 참신성에서는 평가받았지만 개혁능력발휘 측면에서는 평가가 유보된 상태다.
또 이미 인사상 약간의 흠집이 생겨 썩 산뜻한 출발은 못됐다. 주요 자리에 김 대통령의 사람이 포진됐지만 오랜 권위주의시대에 익숙해져 나름의 생존논리를 터득한 닳고닳은 관료체제와 구권력의 생리를 잘 몰라 이를 제대로 뜯어고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이런저런 이유로 김 대통령의 「개혁풍」이 주춤거릴때 풀잎처럼 누워있던 기득권층은 일제히 머리를 들고 저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개혁세력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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