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철준박사 “피살의혹”/4년만에 사신 부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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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산노린 「부인」독살” 유족들 고소로 수사/“사망 당일 보약에 독”과학수사연 감정중
【수원=정찬민기자】 89년 1월 사망한 「한국 과학계의 거목」김철준박사(당시 66세·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의 가족들이 최근 『김 박사는 타살당했다』며 수사를 요청,검찰이 사후 4년1개월만에 시체부검을 실시하는 등 사인규명에 나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18일 수원지검에 따르면 김 박사의 조카 김일형씨(59·개인택시 운전기사) 등 가족들은 지난 1월 『김 박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다 혼인신고를 하고 살아온 H씨(52)가 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독약을 먹여 김 박사를 살해했다』며 수사를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따라 수원지검 강력부 이광재검사는 지난달 김 박사가 안장돼있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평원군민회 공원묘지에서 시체를 발굴,부검을 실시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H씨 등을 소환,1차조사를 벌이고 있다.
평남 순천 태생인 김 박사는 해방 이듬해인 46년 가족들을 북한에 두고 단신월남,독신으로 살아왔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89년) 재직 당시 사무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순직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가족들은 『H씨는 81년 7월부터 가정부로 일하면서 김 박사 몰래 혼인신고(84년 3월9일)를 했으며 사망 당일 보약이 든 보온병속에 독약을 섞어 건네줘 김 박사가 사무실에서 이를 모르고 마셔 숨졌다』며 증거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H씨가 ▲김 박사 명의의 아파트를 김 박사가 사망한후 자기이름으로 이전등기한 점 ▲공갈등 전과2범인 점 등이 범행심증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검찰은 김 박사가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다면 시체 정밀부검으로 충분히 사인규명이 가능하다며 사인이 독살로 드러날 경우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김 박사의 사인규명 수사소식이 알려지자 서울대 제자교수들도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한편 H씨는 검찰에서 『김 박사가 몸이 약해 보약을 복용한 것은 사실이나 독약을 넣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타살설을 완강히 부인했다.
김 박사는 48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단국대·연세대·서울대 등 대학강단에서 35년동안 후진양성에 진력해왔으며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연구』『한국고대국가발달사』『한국문화사론』등이 있다. 이들 저서는 해방 이후 새로운 고대사 연구의 체계를 세운 역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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