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개발 주변지에 승부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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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토지시장에 ‘침체의 그늘’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부재지주 양도세 중과, 땅 전매기간 제한 등으로 투자환경이 악화하자 투자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이다. 전문가들은 토지시장의 침체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세금을 내고 나면 건질 게 없다고 보는 투자자들의 비관적 전망 때문에 토지 투자자들은 계속 시장을 탈출하고 있다. 특히 부재지주 양도세 중과, 비사업용 토지 종부세 과세 같은 정책이 시행에 들어간 지난 1월부터 ‘세금 뭇매’를 견디지 못해 수많은 투자자가 탈출 행렬에 몸을 부쩍 많이 싣고 있다. 손자병법 중 ‘진화타겁’ 전략 강원도와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세금 부담을 피하려는 부재지주 소유의 땅 매물이 시장에 많이 나온다. 하지만 거래 규제 때문에 이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자 매도 호가는 더 떨어지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분위기에 휩쓸린 급매물 땅도 많다. 정책 변화에 따른 막연한 불안감으로 일부 투자자가 땅을 싸게 내던지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시장 침체기를 틈타 이 참에 좋은 땅을 싼값에 선점하려는 투자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동탄2신도시 개발 등 대형 재료가 즐비한 수도권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무릎까지 빠진 급매물 땅을 낚으려는 투자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오히려 규제정책이 쏟아질 때를 매입의 적기로 본 역발상의 투자 전략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부양책이, 과열 국면에서는 규제책이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강력한 규제로 토지시장의 바닥세가 계속되면 정부는 으레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법률·금융·세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든 사례가 많다. 따라서 발 빠른 투자자들은 향후 경기 부양책에 따른 상승기의 시세차익을 기대하며 바닥에서 좋은 땅을 거저 줍는다. 이는 손자병법 36계 중 제5계에 해당하는 이른바 ‘진화타겁’ 전략이다. 진화타겁이란 불이 나 혼란한 틈을 타 실속을 차리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면 실제로 수많은 토지 투자자가 진화타겁의 위력을 실감나게 맛봤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갑작스럽게 닥친 환란으로 빚에 쫓긴 땅 급매물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자 땅값은 단기간에 최고 50% 이상 급락했다. 하지만 곧바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회생 대책이 이어지면서 토지시장은 단기간에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어 2001년 수도권 남부지역을 시작으로 각종 대형 개발계획이 잇따르자 땅값은 급등세로 돌아섰다. 그 후 2∼3년 간 땅값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2004년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구체화되기까지 일반 물가 상승률을 훨씬 웃도는 땅값 상승 장세가 계속됐다. 이를 틈타 부동산 부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국토의 20%가 ‘4가지 규제’에 갇혀 자, 그러면 그때 큰돈을 번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불(땅값 급락기)’이 나자 부리나케 알짜 급매물을 시세 이하로 사들인 투자자들이다. 이게 정답이다. 상식이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땅값은 당연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특히 정부의 고강도 규제정책이 발표되면 땅값은 맥을 못 추고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바로 이때가 땅을 선점할 수 있는 호기다. 이 호기를 놓치고, 나중에 상승기에 뒤늦게 땅에 대한 추격매수에 나섰다가는 성공적인 투자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위와 같은 토지투자기법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2005년 8·31 부동산대책 이후 조성된 토지시장 침체 상황은 IMF 국면과는 전혀 다르다는 논리다. 금융 위기에서 비롯돼 일시적으로 조성된 IMF 때와 달리 8·31 대책 이후 조성된 토지시장 침체기는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인 정부 규제 정책에 원인과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실거래가를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는 제도, 전매기간 제한, 토지분할허가제, 토지거래허가제, 부재지주 양도세 중과 같은 강력한 정책은 취득·보유·양도에 걸쳐 토지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 결과 토지시장에서는 ‘규제 공화국’이니 ‘시장의 이념화’니 하는 말이 나돌고 있다. IMF 이후 침체기와 달리 전 국토의 5분의1 이상이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규제에 묶여 있다. 그래서 땅 투자가 여의치 않다. 특히 지난 1월부터 부재지주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서 토지시장은 신규 투자자들의 진입은 물론, 기존 투자자들의 퇴로까지 막혀 버렸다. 그래서 이 시장에 이른바 ‘출입금지 장세’가 조성된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말 대통령 선거는 토지시장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17대 대선 판도를 가를 핵심 이슈가 바로 부동산 정책이 되리라는 예상이 나돌면서 벌써 토지시장도 후보자별 공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각 후보자 진영의 지역개발 공약으로 토지시장이 꿈틀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에 따른 규제완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당선이 우선인 만큼 세금 경감 같은 폭발력 있는 공약도 막판에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폭등 장세 기대는 이젠 힘들어 토지시장에 대한 규제가 워낙 심해 예전 같은 폭등 장세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거래 규제로 땅값 상승을 뒷받침하는 매수세 형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예전처럼 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도 사실상 힘들다. 2005년 토지거래허가구역의 땅 전매제한기간이 6개월에서 2~5년으로 크게 강화됐다는 것도 잊지 말자. 각종 규제가 집중되면서 땅은 적어도 5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장기 투자 대상이 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 땅 투자를 원한다면 장기적금에 든다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요즘 같은 토지시장 침체기에는 재료가 확실해 향후 땅값 상승의 여지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지역으로 투자를 한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세금을 내고도 어느 정도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즘 시장에서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고밀도 개발이 가능하도록 용도지역을 바꾸는 지역을 기억해야 한다. 도시기본계획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중장기 개발계획을 담은 틀이다. 20년 단위로 수립된다. 해당 시·군의 중장기 개발계획이 모두 담긴 만큼 ‘도시의 개발 청사진’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이 도시기본계획 변경을 꼼꼼히 뜯어보면 어디가 장래에 개발될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도시기본계획에 시가화 예정용지로 지정된 지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가화 예정용지란 녹지지역 등을 주거지역 등으로 개발하기에 앞서 도시기본계획에 개발 예정지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고밀도 개발이 예정된 땅이라 주변지역의 투자가치가 높다. 시가화 예정용지 안쪽의 땅은 개발이 확정되면 수용돼 오히려 투자성이 떨어진다. 반면 그 주변지역은 높은 개발압력으로 땅값이 오히려 급등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도시기본계획 재수립을 추진하는 곳은 용인, 화성, 김포 등이다. 또 해묵은 규제에서 풀리는 지역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곳은 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재료에 비해 파급효과의 범위는 좁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집중적으로 작용하는 개발압력에 따른 땅값 ‘파괴력’은 오히려 개발지역보다 더 크다고 본다. 메가톤급은 아니지만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정밀하게 작용하는 스마트 폭탄과 같은 폭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 하수종말처리장 신규 편입구역, 도시가스 신규 인입지역 등도 투자가치가 높다고 본다. 이런 곳은 건축 제한 완화로 땅 쓰임새가 높아진다. 그래서 땅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신도시, 택지지구 같은 대형 신개발지 주변지역도 장기적으로 돈을 묻어둘 만하다. 고수들은 토지 투자를 할 때 승부처가 될 만한 이런 땅에 정밀 폭격하듯이 투자자금을 투하한다. 투자 타이밍도 중요하다. 대개 땅값은 개발계획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움직이기 시작해 계획이 발표되기 전에 한 차례 손바뀜이 일어난다. 그후 갑자기 매수주문이 급격히 늘어 호가가 가파르게 급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개발계획 발표 직전이나 직후가 매입 타이밍이다. 김영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neodelhi@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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